'에일리언' 등으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란 영화가 있습니다. 필릭 K. 딕의 원작 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SF 영화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힙니다.
어느 정도인지 볼까요?
영국 일간지인 가디언은 지난 2004년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최고 SF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조사를 한 적 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이 꼽았던 영화가 바로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심오한 철학을 담은 영화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해 '스타워즈' '에일리언' 등도 '블레이드 러너'를 앞지르지 못했습니다.
기자 역시 지금까지 본 SF영화 중에선 '블레이드 러너'를 으뜸으로 꼽고 있습니다. 영화 전편을 휘감는 암울한 분위기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요즘 '블레이드 러너'가 또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구글폰 때문입니다.
그 사정을 한번 살펴볼까요?
얼마전 외신들은 일제히 구글이 '넥서스 원'이란 단말기를 만든 뒤에 이동통신 시장에 직접 뛰어들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구글이 단말기 명칭으로 택한 '넥서스 원'이 문제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넥서스'란 명칭은 바로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사이보그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타이렐(Tyrell)사가 개발한 넥서스란 복제인간들이 엄청나게 진화하면서 결국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골자입니다.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는 '넥서스'들을 추적하는 블레이드 러너 역할을 맡고 있지요.
구글이 '넥서스'란 단말기를 내놓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원작자인 필립 딕 가족들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필립 딕의 딸인 이사 딕 해켓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글 측이 넥서스란 명칭 사용 문제를) 상의해 온 적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직까지는 '넥서스 원'이 구글폰의 공식 명칭이 될 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구글 폰 제작을 맡은 대만 업체 HTC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한 서류에 '넥서스 원'이라고 명기돼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구글이 최근 FCC로부터 넥스트 원 단말기 승인을 받으면서 내년 초 출시가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럴 경우 '블레이드 러너' 원작자와의 한바탕 소동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현재 딕의 가족들은 법률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네요.
단말기에 인기 SF영화의 캐릭터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낯선 관례는 아닙니다. 모토로라가 최근 출시한 구글폰 '드로이드' 역시 인기 SF영화인 '스타워즈'에 나오는 로봇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물론 모토로라는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고 사용해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넥서스 원'은 내년 초 이동통신 시장에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 올 전망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이동통신 시장의 기본 패러다임을 흔들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에 앞서 '블레이드 러너'와의 치열한 공방도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정리는 될 테지만, 소동이 적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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