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에 몰아쳤던 '쇄신파동'이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각 계파간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여당 내부에서는 당정청 전면 쇄신론이 제기됐고, 그 일환으로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했다. 여기에는 당 쇄신특위와 개혁성향 초선모임인 '민본21', '친이직계 7인모임' 등 친이계가 선봉에 섰다.
조기 전당대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이들은 박 대표의 '조건부 사퇴'를 일단 수용, 박 대표의 '대화합' 실행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즉, 시한부 휴전인 셈이다.
박 대표 등 '대화합'의 핵심은 '박근혜 대표 추대론'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박 대표가 시한만 연장했을 뿐, 당내 혼란만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러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만사형통'으로 불리는 이상득 의원이 '2선 후퇴'를 선언했고, 이로 인해 당내는 '친이-친박' 양대 구도로 재편됐다. 당 역학구도 변화와 쇄신이 맞물리면서 쇄신보다는 계파간 대립만 부추기는 형국이다.
당내 전반에 민심이반의 원인이 이명박 정부의 일방독주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도 계파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각 진영은 당 쇄신보다 정치적 셈법으로 접근하고 있는 모양새다. 쇄신파동이 결국 계파간 힘대결로 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이유다.
◆친이-친박 '정치적 셈법' 속 쇄신은 뒷전
당장 친박계에서는 '박근혜 대표 추대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현 위기 국면 타개를 위해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친박진영은 쇄신파의 조기전대를 '이재오 복귀'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이 10월 재보선에서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조기 전대를 통해 정치에 복귀시키려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친박계의 판단이다.
친박계는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화합론으로 제시된 '황우여-최경환' 조가 탈락하고 '안상수-김성조'조가 원내대표-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것은 '친이계의 말뿐인 화합'이라며 불쾌감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장광근 사무총장, 진수희 여의도연구소 소장 등 친이재오계가 당내 요직을 장악하자 친박계의 의구심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친박계는 '박근혜 대표 추대론'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면전환용으로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상황이 어려워지자 마지못해 도움을 요청하는 데 그게 무슨 진정성이 있느냐"며 "결국 박 전 대표를 얼굴마담으로 세워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친박계 한 의원은 "추대론을 박 전 대표가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박근혜 대표 추대론을)띄우는 것일 뿐"이라며 "결국 친이계는 전대를 통해 이재오 전 의원을 복귀시키려는 의도 아니냐"고 친이계의 의도에 강한 의문을 품었다.
친박 내부에서도 강·온 차이가 나타나고 있지만 박 전 대표가 대표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 게 중론이다. 더욱이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시점도 올해를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재 박 전 대표든, 박 전 대표의 대리인이든, 당무에 나설 경우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총알받이'일 뿐 이라는데 공통된 인식이다. 박 전 대표가 섣불리 나섰다가는 자칫 차기 대선가도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뿐 아니라 이렇다 할 대선주자가 없는 친이계 입장에선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의 상승세를 꺾고, '포스트 이명박'을 내세워 경쟁을 펼친다는 계산도 나올 법 하다.
친이계 중에서도 조기 전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진영은 친이재오계다. 현 시국에서 다급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간 10월 재보선도 없다'는 우려가 짙게 깔려 있다. 정치현안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의 정치복귀 시점은 10월 재보선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심이 출렁이면서 재보선 당선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친이계의 조기 전대 주장은 이 전 의원의 정치재개 시나리오 아니냐는 관측이다. 물론 친이계는 이러한 시각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친박측이 조기 전대를 줄기차게 반대해온 이유도 이 전 의원의 정계복귀 계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조기 전대가 실시되면 이 전 의원의 자연스런 복귀가 가능하다. 이상득 의원까지 '2선 후퇴'한 상황에서 그가 지도부에 입성한다면 친이계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고, 당내 최대 주주인 친이계를 이끌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또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당협위원장 논란, 향후 10월 재보선 공천, 무엇보다 내년도 지방선거의 공천권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어 친이재오계로선 지금이 이 전 의원의 복귀를 위한 적절한 시점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박근혜 대표 추대론'에 대한 친이 내부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친이직계 의원들은 대체로 '박근혜 대표 추대론'에 긍정적이지만 친이재오계와 정두언 의원 등 '7인 모임'은 신중한 입장이다.
친이재오계 안상수 원내대표가 8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화합형 전대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전대를 열면 누구나 참여할 자격과 권한이 있으며 만약 (출마에)제한을 둔다면 참정권 제한이 돼 원칙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안 원내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이 전 의원의 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시 되는 정몽준 최고위원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조기 전대에 방점을 찍어왔다. 최근에는 "준비된 사람들만이라도 전대에 참여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정 최고위원으로선 조기 전대를 통해 당내 입지를 강화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데다 박 전 대표가 참여한다면 나름 '박근혜 대항마'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선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박희태 대표도 물러설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장고 끝에 4.29 재보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결단을 내렸지만, 이는 10월 재보선 출마의 명분을 쌓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재보선 참패와 이후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 무산 등으로 리더십에 상처가 난 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사퇴론에 불이 붙으면서 박 대표를 옥죄고 있다.
박 대표가 여기서 물러날 경우 사실상 10월 재보선 공천은 불투명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향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계파간 각기 다른 셈법으로 쇄신을 바라보고 있는 등 결국 '쇄신파동'마저도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여권의 쇄신은 멀게만 느껴진다.
/민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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