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통신서비스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미디어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상파 중심의 방송환경에 케이블, 위성, DMB, 인터넷 방송 등 뉴미디어들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고 IP TV 사업을 준비하는 통신기업과 미디어 기업은 경쟁력 있는 콘텐츠 제작사 인수합병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융합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에도 방송콘텐츠 업계는 네트워크 사업자나 플랫폼 사업자에 밀려 정작 논의에서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유료방송의 발전과 함께 그 성장 속도도 빨라진 방송콘텐츠 산업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방통융합시대에 콘텐츠 업계가 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얼마전 서울 올림픽공원내 체조경기장에서는 수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한 케이블 채널의 개국을 축하하는 특집쇼가 열렸다. 종합 버라이어티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표방한 tvN이 개국한 것이다.
CJ미디어가 개국한 tvN은 케이블 채널로는 이례적으로 자본금 1천500억원을 투입, 자체제작 비율을 절반에 가까운 46.5%로 시작하면서 방송업계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tvN의 자본금 규모는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사인 경인TV의 자본금(1천400억원) 규모를 상회하는 액수다.
tvN의 등장은 비슷한 성격의 연예전문 케이블채널뿐 아니라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업계 1위 사업자인 온미디어는 물론, 콘텐츠라면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지상파 계열 PP들에도 긴장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케이블에도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면서 지상파 못지 않은 콘텐츠 제작능력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PP들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CJ미디어와 온미디어를 통해 PP업계에 발을 들인 CJ그룹과 오리온그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콘텐츠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대기업 자본의 투입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PP업계에도 자체 콘텐츠 제작 및 고화질(HD) 콘텐츠 제작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동안 몇몇 채널에서 드라마나 시트콤 제작 시도가 있었지만 저예산 기반으로 자체제작을 하던 터라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온미디어와 CJ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HD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시리즈당 수십 억 원씩 들여 드라마와 영화 부문의 자체 콘텐츠 확보에 도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유료방송'만'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많아지는 현상은 PP업계가 더 이상 콘텐츠 시장의 주도권을 무료 방송인 지상파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또 케이블 시청 1천400만 가입가구, 위성 시청 190만 가입가구의 유료방송 시대를 맞아 유료방송의 체질 개선을 위해 콘텐츠 업계가 나서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계의 한 관계자는 "업체들끼리 적극적인 경쟁을 이끌어내 진정한 다매체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대기업 투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PP업계에서는 여전히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업체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PP양극화 심화...체질개선 요원
PP들은 플랫폼 사업자인 케이블방송사(SO)와 위성방송사업자(스카이라이프)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수신료를 받는다. 그러나 일부 지상파 계열 및 대기업 계열 PP를 제외한 대부분의 PP들은 마땅히 제값을 받아야 할 수신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유사홈쇼핑 광고 등 부가수익으로 매출의 대부분을 메우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2001까지 PP들이 받은 연간 수신료는 케이블TV 시청료의 31.5%를 차지했다. 그러나 PP 등록제가 실시되고 채널 공급 계약이 단체협약에서 개별 계약으로 바뀐 2002년부터는 PP의 수신료 비중이 시청료의 12.5%로 뚝 떨어졌다. 일부 MSO는 5~6% 정도의 수신료만 PP에게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PP들의 매출은 유료방송 가입가구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조사한 지난해 PP들의 재산상황을 살펴보면 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134개 PP사업자중 적자를 본 사업자는 이 중 절반인 64개에 이른다. 그나마 흑자를 본 나머지 업체들 중 지상파 계열 PP와 대기업 계열 PP 등 17개 법인의 비중이 전체 순익 규모(1천496억원)의 61%를 차지해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낮은 수신료 기반의 불균형적인 수익구조로는 자체제작에 필요한 투자란 어려운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시청률이 검증된 해외 프로그램을 사오거나 지상파 프로그램을 재방송하는 쉬운 길을 택하게 된다. 또한 수익과 직결되는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의 방송을 만드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PP업계는 물론 콘텐츠제공업자(CP)업계도 마찬가지다. PP업계가 SO로부터 받는 낮은 프로그램 수신료 때문에 투자 여력이 없어 양질의 콘텐츠 제작이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를 선뜻 끊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CP들도 인터넷 포털이나 이동통신사들에 콘텐츠를 제공하면서도 낮은 콘텐츠 이용료를 그대로 감내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방송콘텐츠 시장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야 할 독립제작사들 역시 이름있는 드라마 제작사를 제외하고는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체 제작한 콘텐츠마저도 지상파 방송사와의 불공정 계약으로 저작권을 내줘야 하는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 위성, DMB, 와이브로, IP TV 등 다양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방송콘텐츠 사업자들이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전략을 앞서서 주도할 만한 환경은 충분히 조성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와중에 제 목소리를 내야 할 PP, CP, 독립제작사 등 방송콘텐츠 사업자들이 상대적으로 힘 있는 SO와 이통사, 대형 포털, 지상파 방송사들의 이기주의에 밀려 마음껏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방송콘텐츠 업계 전반에서는 "멀티 플랫폼 시대에서까지 더 이상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나 이동통신사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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