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2층에서 종묘와 북한산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사진=아이뉴스24]](https://image.inews24.com/v1/a22504065781e4.jpg)
[아이뉴스24 소민호 기자] 을지로3가 근처에서 15년여를 지내며 자주 봐온 곳이 종묘 근처다. 그 앞에는 세운상가가 서 있고, 퇴계로까지 일직선으로 비슷한 높이의 상가가 펼쳐진다. 상가 좌우는 낡은 인쇄소나 철공소, 조명기구 판매소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일대 골목을 지나다보면 묵직한 잉크냄새나 직원들의 잰걸음, 식당에서 배달해준 밥그릇, 좁은 골목길을 오가는 삼륜 오토바이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을지로 낡은 골목 안쪽이 이른바 '핫플'로 부각됐다. 세련된 10대~20대들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성사된 것이다. 소탈한 음식점이 점점 세련된 인테리어의 커피숍이나 음식점 등으로 바뀌게 된 시점이 그 무렵이다.
이때부터 세운지구 재개발은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세운지구 재정비촉진구역'은 2006년 지정됐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들어서면서 재생과 보존 중심 정책으로 전환되고 나서는 거의 개발 진척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도심 중의 도심이라는 입지적 강점을 가진 땅을 세상은 그대로 두지 않았다. 더이상 영세 철공소나 인쇄소 같은 사업체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철수한 자리에 젊은층의 감성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인스타그램이라는 강력한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이른바 '힙지로'로 부각된 것이다. 유명한 평양냉면 집이나 호프집 터를 개발하느냐를 두고 정책이 뒤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다시 취임하면서부터 10년 넘게 방치됐던 세운지구 재개발이 본격화했다. 사실 구닥다리에 속하는 센츄럴관광호텔이나 최근 세운3지구 일부에 들어선 호텔더보타닉세운과 리파인더보타닉호텔에 묵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그 아래 펼쳐진 서울 도심은 초라하기 그지없을 터여서 개발속도를 높이려는 의지가 강해졌을 수 있다. 세운지구가 여전히 낙후된 모습으로 방치돼 있음을 생각하며 오 시장이 취임하던 해에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그런 심경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운상가 2층에서 종묘와 북한산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사진=아이뉴스24]](https://image.inews24.com/v1/44453c7cb569c8.jpg)
최근엔 세운4구역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울시가 고도제한을 최고 71.9m에서 141.9m로 상향하는 계획변경을 10월30일 고시한 후 정부와 여당이 건축물 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자칫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에서 지정 해제될 우려가 있다는 배경에서다.
세운지구 중 가장 먼저 정비구역으로 지정됐고, 2023년 2월 철거까지 마친 상태에서 불거진 세운4구역 개발 논란은, 국가유산청의 문화유산법에 따라 더욱 지리한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20년 넘게 개발사업을 학수고대해온 토지주들 중 벌써 50여명이 세상을 떴다고 한다. 도시의 패러다임이 이미 바뀐 상태에서 골목의 옛정서를 떠올리는 이들은 토지주들의 간절한 바람에 비하면 사치에 불과하다. 오 시장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나, 막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해마다 쌓여가는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토지주들과 개발업체의 '피눈물'에 비하면 감상적인 눈물이 아닐까.
느닷없이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논란 속에 개발업체를 향한 뜬금없는 손가락질까지 더해지며 또다시 하릴없이 길어지게 된 세운4구역 개발사업. 개발업체는 매입했던 땅 3135.8㎡를 매각하겠다면서 "정상적으로 추진돼도 개발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이상 정쟁에 거론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주말 세운상가의 공중보행로를 따라 걷던 무리가 세운4구역 공터를 보며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도심지 땅을 저렇게 놔두면 어떡하나. 빨리 개발해야 할텐데." "너무 높게 지으려고 해서 그런거 아니에요?" "오랫동안 추진해온 사람들한테 낮게 지으라고만 하면 사업성이 안 나올텐데, 손해보고 지으라고 하면 일이 되겠어요?" 시민들은 답을 다 알고 있는 듯 하다.
단독주택 한 채 짓고나면 10년을 늙는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대규모 개발사업은 상상을 초월할 리스크를 져야 한다. 어느 누구라도 손해보며 그런 개발사업을 할 수 없을 터다. 법적 논란이 있다면 시간 끌지 말고 최대한 빨리 해소시켜주는 것이 공복의 도리이자, 20년간 추진해온 이들의 바람이다.
/소민호 기자(sm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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