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술이 '익는다'고 하죠. 이곳이 술이 익는 공간입니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 들리나요?"
4만리터 용량의 발효 탱크 뚜껑을 열자 강렬한 술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매운 연기를 가득 들이마신 것처럼 코끝이 찡했다. 아직 다 익지 않은 술은 참기 어려울 만큼 강한 향을 품고 있다. 가까이서 맡으면 머리가 어지러울 수 있다고 현장 관계자가 경고할 정도다.
쌀과 물, 누룩, 효모 등이 어우러진 '술덧(증류 전의 발효주)'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끓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발효를 마친 술은 어느 정도 맑게 거르는지, 어떤 추가 원료 등을 더하는지에 따라 백세주가 될 수도, 막걸리가 될 수도 있다.
지난 6일 방문한 국순당 횡성 양조장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주 양조장이다. '술(酒)이 샘(泉) 솟는다'는 의미를 가진 주천강(酒泉江)변 해발 500m 청정 지역에 위치한 곳 지하 340m에서 퍼올린 청정수를 술 빚는 데 쓴다. 부지 면적은 14만4367㎡. 12시간 기준 1개 라인에서 백세주(375㎖ 기준) 약 30만병, 생막걸리(750㎖ 기준) 약 35만병이 생산된다. 국순당은 지난 2003년 총 285억원을 투자해 2004년 9월 횡성 양조장을 완공하면서 본사까지 강원도 횡성으로 이전했다.
여기에선 국순당 대표 제품 백세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백세주는 원재료를 탱크에 넣고 발효·숙성하는 양조 과정과 만들어진 술을 병입·포장하는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양조 과정은 누룩을 배양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통상 쌀을 쪄서 이용하지만 국순당은 가루 낸 생쌀과 상온의 물을 그대로 사용해 술을 빚는다. 국순당의 자랑인 '생쌀발효법'이다. 고려시대 명주인 백하주의 제법을 바탕으로 복원한 특허 기술이다. 열을 가하지 않아 영양소 파괴가 적어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이 다량 함유돼 있다. 쌀을 찌는 과정이 생략돼 에너지 절감 효과가 크고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최소화된다.
이어지는 담금 과정은 배양된 누룩을 쌀, 식물부원료 등과 혼합하는 단계다. 담금 과정에 이어 발효탱크에서 발효를 마친 술이 맑은 술을 위해 고형분을 거르는 압착 과정을 거치면 백세주가 된다. 막걸리 등 탁주를 만들려면 이 과정을 생략해야 한다. 이어 맛을 부드럽게 하는 냉장 숙성 과정까지 마치면 양조 과정이 완료된다.
완성된 술은 'R·F·C실'에서 병입·포장한다. 병을 고온으로 세척(Rinser)해 술을 병에 담고(Filling), 뚜껑을 막는(Capping) 과정이다. 이물질 유입 방지를 위해 빈병에 술을 주입한 후에 뚜껑을 닫는 작업은 투명 플라스틱으로 둘러싼 별도 공간에서 이뤄진다. 이후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검사와 전문가가 직접 확인하는 육안 검사까지 통과한 제품을 고객에 판매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세주는 여전히 국순당을 지탱하는 들보 역할을 하고 있지만, 폭발적 인기를 구가했던 과거의 영광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 한다. 지난 1992년 출시된 백세주는 2003년 연간 매출이 1300억원대까지 올라갔으나, 현재는 200억원에 못 미치는 매출을 거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순당의 백세주를 포함한 약주 매출은 63억원으로 지난해(71억원)와 지지난해(87억원)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감소하는 추세다.
이에 국순당은 지난 9월 백세주 리브랜딩을 단행하며 반등을 노리고 있다. 술의 감미와 산미가 도드라지지 않게 재료의 비중을 조정했고, 병도 기존 투명병에서 갈색병으로 바꿨다. 브랜드 앰배서더로는 가수 잔나비 최정훈을 발탁하고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의 등장인물 고길동과 함께한 이색 브랜드 필름도 선보였다. 올드한 기존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고, 2030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으려는 변화다.
박선영 국순당 생산본부장은 "백세주가 예전보다 고객과 접점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제2의 백세주'를 찾기보다 백세주의 브랜드 가치를 계속 이어 나가고 발전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며 "주요 타깃은 20~30대 젊은 소비자다. 과거 백세주가 건강하고 어른들이 마시는 술이었다면, 지금은 젊은 소비자가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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