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유림 기자] SM엔터테인먼트(SM)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됐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약 1년 8개월 만에 복귀해 그룹 쇄신을 이끌던 김 위원장의 구속으로 카카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카카오와 계열사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를 중심으로 사태 수습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남부지방법원(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은 전날(22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최대 20일인 구속 기간 동안 김 위원장을 상대로 시세조종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해 재판에 넘길 전망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카카오가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와 함께 약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한 것으로 보고 수사해 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 받고 승인한 것으로 봤다.
◇AI 등 사업 추진 차질 불가피…정신아 대표 중심 체제로 사태 수습 전망
한국 IT 기업 중 창업자가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보다 앞서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카카오 그룹 경영진을 겨냥한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됐던 가운데, 창업자가 구속되는 결과를 맞으면서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2022년 3월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놨던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경영에 복귀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함께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CA협의체 공동의장을 맡아 '투톱체제'를 꾸린 한편, 경영쇄신위원장을 맡아 그룹의 쇄신 작업을 주도해 왔다. 각 계열사의 독립적인 경영을 우선하는 자율경영 기조에서 벗어나 CA협의체를 대대적으로 개편함으로써 카카오와 계열사를 아우르는 그룹 차원의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카카오는 IT 기업들이 최근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인공지능(AI) 사업에서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부재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더욱 불가피해졌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카카오는 더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된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방어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고 성장 동력 발굴과 같은 경영 활동도 위축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투자 유치에서도 '빨간불'이 켜졌다. 전성민 가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사안의 경우 해외 투자자에게는 (회사가)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기업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타격이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수합병(M&A)이나 경영 쇄신의 일환인 계열사 축소, 이른바 '몸집 줄이기'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적으로 의사결정권자인 김 위원장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룹 경영에 영향을 미칠 리스크 불씨도 남아있다. 향후 김 위원장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양벌규정에 따라 카카오 법인에 벌금형이 내려지면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따라 카카오뱅크 1대 주주 지위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유죄가 확정될 경우 카카오뱅크 보유 지분(27.17%) 가운데 10%만 남기고 나머지를 처분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부재로 카카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신아 대표를 중심으로 혼란 정국과 사태 수습이 이뤄질 전망이다. 정 대표는 카카오 수장과 더불어 CA협의체 공동의장도 맡고 있어 정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 경영 체제를 가동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 대표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다음 날인 지난 18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모인 임시 그룹협의회에서 "엄중한 현실 인식 하에 꼭 해야 할 일들을 과감히 실행해 갈 것"이라며 "임직원들도 흔들림 없이 본업에 충실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유례없는 위기 상황이지만 창업자(총수)가 없더라도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구축해 현실화하고 이를 카카오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정유림 기자(2yclev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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