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정민 기자] 1971년 가수 데뷔, 1991년 극단 '학전'을 창단한 공연예술계의 대부 김민기가 영원한 '뒷것'으로 우리 곁에 남게 됐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6·25 이후 서울로 이주해 재동국민학교·경기중·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음대를 다닌 누나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한 김민기는 대학 1학년때 동창 김영세와 '도비두'라는 포크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1971년 '김민기 1집'으로 정식 데뷔한 이후 '아침이슬',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 많은 민중가요를 작곡해 화제가 됐다. 당시 '쎄시봉' 멤버로 알려진 가수 윤형주·조영남·송창식, 가수 양희은, 시인 김지하 등과 교류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김민기는 군사정권 시절 민중가요 탄압으로 고초를 겪었다. 데뷔 음반은 물론, '아침이슬' 등 그가 만든 노래는 줄줄이 금지곡이 됐다. 1972년에는 신입생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으며, 1975년 카투사 복무 당시 유신 반대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가 불렸다는 이유로 보안대 조사도 받았다.
그러나 김민기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막노동이나 공장 취업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1977년 '상록수' 작곡,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결성 등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김민기는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74년 마당극 '아구' 제작에 참여하며 공연계에 발을 딛는다. 78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 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연출을 거쳐 민주화 이후 1991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한다.
공연제작자로 변신한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성공과 더불어 대학로 문화의 한 축이 됐다. 배우 황정민·설경구·김윤석·조승우·이정은 등 학전을 통해 700여명의 예술인을 배출했으며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아동극 제작에 헌신했다.
예술인들을 위한 '뒷것'으로 살아간 김민기는 이후 암 투병 소식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장현성·조승우 등 학전 출신 배우들은 물론, '쎄시봉'에서 인연을 맺은 배우 윤여정도 쾌유를 빌었다. 김민기의 건강 악화와 함께 경영난까지 겹쳐 학전 소극장은 지난 3월 33년의 세월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김민기는 학전 마지막 공연에서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며 소회를 남겼다. SBS는 지난 4월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라는 이름의 3부작 스페셜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5월 '이달의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민기는 지난 21일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대학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4일 발인,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받지 않는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씨와 슬하 2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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