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지영 기자] 본격적인 슈퍼 주총 위크가 시작된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 2대주주 등의 적극적인 주주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안이 이사회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들은 주주환원책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주총회를 개최한 상장사 중 행동주의, 2대주주가 제기한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와의 표 대결에서 압승을 거뒀고 다올투자증권의 2대 주주가 제시한 주주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15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 주주제안을 모두 부결했다. [사진=아이뉴스24 DB]](https://image.inews24.com/v1/1613644f95cdc5.jpg)
◇ 5개 행동주의 펀드 안건, 모두 부결
삼성물산은 지난 15일 열린 제6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무제표·이익배당 승인의 건 △자사주 소각의 건 △이사 선임의 건 △감사위원회 선임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이날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미국계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 한국 안다자산운용 등 5개 자산운용사 행동주의 펀드는 보통주 주당 4500원, 우선주 주당 4550원의 배당 증가를 요구했다. 이를 합하면 7364억원이며 행동주의 펀드들의 지분 합계는 1.46%였다.
주주연대 대리인 법무법인 린은 "삼성물산이 뛰어난 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은 지속적으로 투자 손실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본 배분과 주주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배당 증가와 자사주 매입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주총장을 찾은 소액주주들도 배당 확대를 요구했다. 한 소액주주는 "수십년간 주식을 갖고 있었는데 1억8000만원 손해를 봤다"며 "삼성이라는 이름을 믿고 손해가 만회될 것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죽을 나이가 됐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소액주주도 "성장을 위해 재투자한다면 미래사업 같은 부분 투자가 어떻게 되는지도 소개해야지 않느냐"며 "본업을 잘하고 있다면 주가가 40여년간 이 모양은 아니지 않겠나. 은행에 맡겨도 이자 5%는 준다"고 일침을 가했다.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의 호소에도 의결권을 가진 1억3800만주 가운데 77%에 해당하는 1억600만주가 이사회 안에 찬성하며 주당 2550원의 배당이 확정됐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은 3200만주(23%)의 동의를 얻어 부결됐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제안한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안건도 82%에 해당하는 1억1400만주가 반대해 부결됐다. 반대로 주주환원정책을 위해 내놓은 삼성물산의 자사주 소각 건은 가결됐다.
◇"하나라도…" '슈퍼개미' 김기수 안건, 주주 설득 실패
다올투자증권은 '슈퍼 개미'인 2대주주 김 대표의 안건을 모두 부결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말 △권고적 주주제안 신설의 건 △주주총회 보수심의 신설의 건 △이사의 수·임기 변경의 건 △사외이사 강형구 한양대학교 교수 선임의 건 △차등적 현금 배당의 건 △임원퇴직금 지급규정 일부 변경의 건 △유상증자에 따른 자본금 확충의 건 등 총 12건의 주주제안을 냈다.
김 대표 대리인은 주총장에 참석해 "회사는 한 개인의 사익만을 위해 운영해선 안 된다"며 "다올투자증권의 실적이 안 좋은 상황에서 주주분들의 건전한 견제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기에 권고적 주주제안과 차등적 배당 등을 제안했다. 해당 안건들이 통과된다면 정부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좋은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안건이 모두 부결됐고 주총 도중 대리인은 "실적도, 주가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진도 재선임됐고 보수 한도도 그대로 유지됐다. 회사에서 단 하나라도 책임을 지고 통과시켜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지만, 주주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이사회 벽 못 넘은 행동주의·2대주주, 예견된 일이었나
5개 행동주의 펀드와 맞선 삼성물산은 삼성 총수 일가와 우호지분, 국민연금 등이 이사회의 안건에 손을 들면서 삼성물산이 승기를 잡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전날 밤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하다'는 이유로 이사회 측 배당안을 지지하고, 주주제안의 자사주 매입 안건은 반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삼성물산이 3개년에 걸쳐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다올투자증권의 2대주주의 패배도 예견된 일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주총 직전 SK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이 작년 한 해 동안 각각 4.7% 지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주식 매수는 주주명부 폐쇄일인 작년 12월 말까지 지속됐다. 중원미디어도 작년 말 KB자산운용이 보유한 다올투자증권 주식의 블록딜 거래에 참여해 지분 4.8%를 확보했다. 이들 모두 지분 변동사항 공시 기준인 5%를 넘기지 않아 지분 보유 사항이 뒤늦게 알려졌다.
SK증권, 케이프투자증권, 중원미디어의 지분이 알려지기 전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25.19%, 김 대표의 지분은 14.34%로 10%포인트 밖에 차이나지 않았으나 우군이 드러나면서 25%대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지분 46.27%를 가진 소액주주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됐는데, 소액주주 대부분도 이 회장에 표심을 몰아줬다.
결국 두 기업에서의 주주제안이 부결되면서 일각에선 행동주의 펀드, 2대주주의 과한 주주제안이 경영 불안을 야기해 소액주주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 정부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주주환원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은 주주환원책 강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해석했다.
명재엽 KCGI자산운용 운용팀장은 과한 주주제안으로 경영 불안을 야기하고 결국 표 대결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다는 지적에 "주주환원이 과도해서 미래 투자에 차질이 빚어진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여력 대비 과도하게 유보하고 현금을 쌓아놓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몇몇의 기업을 제외하곤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제시한 곳도 없다"며 "아직 당국의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안이 나오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이번 슈퍼 주총 위크에 실망스러운 반응들이 나온다면 곧 발표될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안에서 강한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소극적인 주주환원책이 결정된 후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두고 재료 소멸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올투자증권은 주총이 열린 15일부터 이날까지 총 5.23%가 하락했고 같은 날 주총을 연 삼성물산도 양일간 7.61%가 밀렸다.
업계 관계자는 "증시의 구조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일시적인 하락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일본의 경우도 5년 동안 꾸준히 우상향했다. 최근 주주환원책 강화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주가 하락을 재료 소멸로 보기엔 섣부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영 기자(jy100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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