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특허 침해 문제로 갈등을 빚던 LG전자와 중국 TCL이 극적인 합의를 통해 화해했다.
결국 LG전자는 TCL과 세 번의 싸움에서 모두 합의, 승소 등으로 유리한 결말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무분별한 특허 침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올해 3분기에 TCL과 작년부터 이어오던 소송 등 모든 분쟁을 종료키로 했다. TCL의 특허 침해를 문제 삼아 소송을 진행했지만, 로열티를 받는 것 등으로 합의가 이뤄지면서 양사간 갈등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양사가 원만히 합의돼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한 것이 맞다"며 "합의 내용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LG전자에 재차 딴지 TCL…갑작스런 합의, 韓 진출 의식?
LG전자와 TCL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LG전자는 2007년 TCL에 TV 관련 기술 특허침해 소송을 걸었고, 당시 소송은 합의로 종결됐다. 이후 12년이 지난 2019년 11월엔 스마트폰 롱텀에볼루션(LTE) 표준특허 관련 침해금지 소송을 독일 만하임 지방법원에 제기했고, 지난해 3월 승소했다.
이번 합의는 LG전자가 지난해 4월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에 'TCL이 자사의 TV 기술 특허를 탈취했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한 것이다. LG전자는 외부기기 리스트 제공방법, 평면 조명 장치 등 6개의 특허를 TCL이 침해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두고 2018년 말부터 TCL과 특허 라이선스 협상을 진행했지만, TCL이 제대로 응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었다.
TCL은 LG전자의 미국 특허 6건을 상대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차례로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 특허무효심판(IPR)을 청구하며 맞불을 놨으나, 결국 LG전자에게 꼬리를 내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TCL이 최근 한국법인을 세우고 네이버에 공식스토어를 여는 등 한국 진출에 나선 것이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다. 이와관련, 한국 법인 설립과 이유, LG전자와의 합의 여부에 대해 TCL 홍보를 담당하는 대행사 측에 질문하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메일로 보내겠다"는 성의 없는 대답을 내놓은 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TCL 한국법인은 한국시장에 대응해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동시에 성장성이 높은 프리미엄 TV 라인업을 지속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을 펼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에서 TCL의 한국 진출 성공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TV 시장은 삼성·LG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중소 TV 업체들과 중국 업체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남은 점유율을 두고 경쟁하는 구도"라며 "이미 한국에서 유통사를 두고 제품을 선보여왔던 TCL이 직접 한국 시장에 진출해 제품 판매에 나선다고 해도 삼성·LG를 위협하지 못하고 중소 TV 시장에서 '찻잔 속 태풍'에만 그칠 것"이라고 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TV 시장 전체 규모는 150만~200만 대 수준으로, 연간 4000만~5000만 대에 달하는 북미 등에선 존재감이 약하지만, 시장 규모 대비 프리미엄 비중이 큰 시장"이라며 "삼성·LG의 TV 평균 판매 가격이 700달러대인 데 반해 TCL(400달러)은 절반 남짓하고, 대표 제품을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QLED로 같이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안방인 국내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中 특허 침해…BOE에 뿔난 삼성전자, 공급 물량 빼기 속도
LG전자와 TCL이 이번에도 합의를 했지만, 업계에선 중국 업체들의 무분별한 특허 침해가 아직 횡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려를 표했다. LG전자는 다른 중국 가전업체인 하이센스와도 이와 관련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9년 11월 TV 관련 4개 기술을 침해했다는 취지로 하이센스에게 소송을 냈다. 해당 소송은 지난해 3월 양사 합의로 마무리됐다.
삼성전자와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와의 갈등도 중국 업체들의 특허 침해가 확인된 대표적 사례다. BOE가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개발한 '아이폰12' OLED 디스플레이 특허 4종을 무단으로 도용한 것이 화근이 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사실을 인지한 후 BOE에 통지서를 통해 항의하고, 소송까지 걸었다. 하지만 BOE는 되레 중국에서 지난 5월 삼성디스플레이를 상대로 특허 침해 혐의가 있다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신들의 OLED 패널 기술을 베꼈다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결국 맏형인 삼성전자는 보다 못해 칼을 빼들었다. BOE 패널 물량을 대폭 줄인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DX부문의 3분기(7~9월) 기준 디스플레이 패널 주요 매입처에선 BOE가 제외됐다. 삼성전자의 주요 부품 매입처에서 BOE가 제외된 것은 지난 2015년 4분기 이후 7년 6개월 만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노트북과 TV 등에 사용하는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을 주로 거래하며 BOE의 최대 고객으로 알려져 왔다.
BOE와의 갈등으로 촉발된 공급망 재편에 따라 삼성전자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겼다. BOE 대신 일본 샤프, 대만 AUO 등과의 협력 비중을 더 확대하고 나선 것이다. 또 삼성전자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맞춰 국내 기업인 LG디스플레이의 비중도 점차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BOE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싸움에 삼성전자까지 나선 것은 중국이 기술 탈취를 통해 시장 내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는 것을 마냥 보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실제 2004년부터 17년 동안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유지한 한국은 LCD(액정표시장치) 부문에서 중국발 저가 제품에 밀리며 2021년에 1위 자리에서 밀렸다.
이후 LCD 사업을 줄이거나 접고 OLED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OLED 사업에서도 후발주자인 중국이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OLED 시장 점유율은 한국 81.3%, 중국 17.9%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가전 등 전방위에서 중국의 노골적인 특허 침해, 기술 탈취 움직임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며 "각 업체들이 각자 대응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대응책 마련을 두고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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