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돌파하며 '토종 팹리스'의 위력을 보여준 LX세미콘이 올 초부터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 전반적으로 경기 둔화 여파를 맞은 데다 주력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가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함께 타격을 입은 것이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X세미콘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9% 하락한 5천214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무려 69.4%나 줄어든 391억원으로 마감됐다.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1분기에 비해 3분의 1수준으로 줄어 7.5%를 기록했다. 다만 분기별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내내 하락하다가 올해 들어 개선됐다는 점은 다소 고무적이다.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분기 21.9%, 2분기 18.3%, 3분기 12.6%, 4분기 2.8%였다.
올해 1분기 애플리케이션(응용처)별 매출 비중은 TV가 29%, 정보기술(IT) 17%, 모바일 50%, 기타 4%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TV 비중이 8%P 감소했지만 모바일 의존도가 21%P 늘었다.
제품별 매출 비중으로는 소형 디스플레이 구동칩(DDI)이 50%로 가장 높았다. 소형 DDI는 주로 모바일과 태블릿 등 제품의 디스플레이 패널에 탑재된다. TV나 모니터에 쓰이는 대형 DDI는 43%를 기록했다. TV용 대형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주요 고객사 가동률 감소가 영향을 미쳐 대형 DDI 비중이 다소 줄었다.
LX세미콘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6% 늘어난 2조1천193억원을 기록하며 '2조 클럽'에 당당히 입성했다.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부족한 우리나라 팹리스 기업이 연매출 1조원을 넘기기도 힘든 부분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있다는 평가다. 종합반도체회사(IDM)인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를 제외하면 반도체 설계 분야로만 거둔 것은 LX세미콘이 처음이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이익은 1년 새 16.0% 하락한 3천106억원에 머물러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실적은 참혹했다. 이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2% 줄어든 4천565억원, 영업이익은 85.2% 줄어든 127억원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LX세미콘의 실적은 지난해 '상고하저'의 흐름을 보이며 상반기와 하반기가 극명하게 엇갈렸다"며 "하반기에 글로벌 경기침체 본격화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TV, 스마트폰, PC 등 판매가 급감해 고객사 수요가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LX세미콘의 지난해 상반기 실적은 좋은 흐름을 보여줬다. 매출은 1조1천842억원으로 반기 첫 1조원을 돌파한데다 2분기에는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천억원을 넘어섰다. 통상 2분기가 TV 및 스마트폰 비수기임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3분기 들어 분위기가 바뀌면서 매출(4천786억원)은 전기대비 20.1% 전년동기대비 5.3% 떨어졌다. 이 기간 영업이익(604억원)은 전기 대비 44.9% 전년 동기 대비 53.2% 감소했다. 4분기 실적은 낙폭이 더 컸다.
이는 LX세미콘의 최대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의 부진 여파가 주효했다. LX세미콘의 매출 구조는 LG디스플레이를 통해 LG전자, 애플 등 기기에 디스플레이 구동칩(DDI)를 탑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LG디스플레이가 LX세미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7%로 절반이 넘는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TV 시장 불황 등의 여파로 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 탓에 LX세미콘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재고자산이 1년 새 140% 늘어 4천826억원을 기록했다. 재고자산 회전율은 7.4회에서 4.2회로 줄었고, 재고자산회전일수도 49.3일에서 86.9일로 2배 가량 길어졌다. 49일이면 충분했던 LX세미콘의 재고 소진 기간이 87일로 대폭 둔화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시장 침체로 LX세미콘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DDI 수요 역시 함께 줄면서 재고자산 증가로 이어졌다"며 "LG디스플레이가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올해부터 디스플레이 패널 감산에 나섰다는 점에서 LX세미콘의 재고 상황이 단기간 내에 개선되기 어려울 듯 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일각에선 LX세미콘이 올해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봤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스마트폰, TV 등 전자 기기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디스플레이 시장도 움츠러 들 것으로 예상돼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3년 TV 패널 출하량이 전년대비 2.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손보익 LX세미콘 대표는 올해 전방산업 악재가 예고된 만큼 DDI에 편중된 사업구조 재편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DDI는 LX세미콘의 주력 아이템으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0%에 육박했다. DDI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수많은 픽셀을 구동하는 데 쓰이는 반도체 칩이다.
특히 손 대표는 새로운 먹거리로 방열기판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LX세미콘은 지난 2021년 10월 LG화학이 보유한 일본 FJ머티리얼즈 지분 30%와 유무형 자산 등을 인수하면서 방열 소재 분야에 뛰어든 바 있다. 지난해부터 경기 시흥에 구축 중이 방열기판 공장은 이르면 올해 상반기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또 다른 먹거리는 LG이노텍으로부터 넘겨받은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부문이다. SiC는 기존 실리콘(Si) 대비 내구성 등에 강점이 있어 전기차 부품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 대표는 지난 3월 주총에서 "기존 디스플레이 분야 외에도 신규 제품의 지속적인 발굴과 성과 창출을 통해 사업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이라며 "기축사업에서의 지속 성장을 위해 고객을 다변화하고 제품 라인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과 고객 니즈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선행 개발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주력 제품인 디스플레이 IC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 개발을 통해 고객을 지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DDI에선 소형 DDI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수익성 제고에 나섰다. 올해 2분기에는 주요 고객사가 애플 '아이폰'에 공급하는 디스플레이 비중이 높아지면서 LX세미콘 실적도 개선세를 나타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에 LX세미콘 이날 주가는 기대감이 반영돼 전 거래일보다 5.18% 오른 10만7천700원에 마감됐다.
김소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대형 DDI는 LG디스플레이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가동축소영향으로 전년 대비 실적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소형 DDI사업부는 올해 2분기부터 LG디스플레이와 중국 BOE가 아이폰 내 점유율 확대가 전망됨에 따라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LX세미콘의 주가는 올해 하반기 아이폰용 DDI 공급 확대와 내년 OLED 아이패드용 신규 DDI 공급 모멘텀 고려 시 여전히 매력적인 수준"이라며 "북미 세트 업체향 중심의 실적 성장 모멘텀에 밸류에이션 매력까지 보유한 LX세미콘에 대한 기업가치 재평가를 기대하며 업종 탑픽(Top Pick)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