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산업이 레드오션을 벗어나 블루오션으로 가는데 가장 큰 변수가 정부의 규제정책이다. 블루오션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별업체들의 노력도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성공할수도 실패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 영역에서의 경쟁자 수, 경쟁의 강도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좌우된다. 또 정부가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제도, 요금규제, 접속료 규제 등등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해당 시장에서의 경쟁의 강도는 크게 달라진다. 결국 정부의 규제정책에 따라 레드오션의 붉은 정도가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말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작금의 통신산업이 핏빛 바다에서 출혈경쟁을 펼치게 된 데는 사업자간 자발적 경쟁외에도 상당부분 정부 정책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 통신산업이 블루오션을 찾아가는데 있어 정부의 규제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짚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통신산업은 초기 네트워크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자연독점성'이 강하고, 특정 네트워크에 가입한 사람 수가 증가할수록 이용자들의 효용이 증가해 이른바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네트워크 외부성'이 큰 영역이다. 특히 공공재 성격으로서 한정된 자원인 주파수를 수단으로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고, 정부가 개입해 일정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 일부 이론이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의 주된 논리다.
그러나 10~15년이 지난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굴지의 외국 통신업체가 작정하고 덤벼도 견뎌낼만큼 경쟁력을 갖췄는가 자문해 보면 대답은 회의적이다. 유선시장에서는 시내, 시외, 국제 전부분에서 여전히 선발사업자의 지배력에 큰 변화가 없다. 초고속인터넷서비스에서도 1위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차지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선시장에서는 선·후발사업자 모두 경영상황이 나쁘다. 선발업체인 KT는 매출과 수익성 정체에 허덕이고 있다. 후발업체들 중에서는 이미 두루넷, 온세통신 등이 법정관리의 구렁에 빠졌고, 결국 두루넷은 하나로텔레콤에 합병당했다. 경쟁과정에서 M&A가 일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므로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루넷을 인수한 하나로텔레콤은 경쟁력을 갖춰느냐는 질문에는 역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무선통신 시장 역시 건강한 상황은 아니다. 선발사업자는 선발사업자대로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하향평준화 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을 잃었다고 불만이다. 후발사업자들 역시 정부의 정책실패로 불공정한 경쟁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이익만 언젠가 구축될 이른바 '유효경쟁체제'를 위해 담보로 잡혀와야 했다. 이쯤이면 정부의 정책을 심도 깊이 반성해 봤어야 한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근년에 들어와서는 소위 'Principle of Ambiguity'를 내세워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않아왔다. 진대제 장관은 이에대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정부가 특별한 정책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대답했다. 시장 팽창기에는 사업자들이 신규가입자 확보에 주력하다보니 정책에 대한 불만이 없다가 신규시장이 더이상 늘어나지 않자 정책에 불만을 제기하고 기대려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태적 정책 태도는 결과적으로 국내 유·무선 통신시장 전체를 레드오션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말았다. '성숙한 시장'을 지켜만 보면서 그 시장에서의 불공정 경쟁 행위를 막는 데만 관심을 쏟다가 새로운 시장으로의 물꼬를 터주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만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기업이 신규시장 창출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산업 육성 중심의 동태적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한편 2000년대들어 대표적인 통신정책이었던 '통신 3강체제'(이에대해 정통부는 "공식적으로는 한번도 3강체제 구축을 정책목표라고 밝힌적이 없다"고 하고 있다)도 향후 업체들의 블루오션으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반성해 봐야 한다. 정통부는 이른바 '유효경쟁체제 구축'을 위해 선발사업자의 요금인가 정책, 접속료 정책, 전파사용료 차등 정책, 단말기 보조금 금지정책 등을 펼쳐왔다. 이들 정책은 분명 선발사업자의 약탈적 요금정책이나 과도한 영업을 막음으로써 시장의 안정을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을 고착화시켜 후발사업자로 하여금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 유약하게 만든 측면도 분명 있다. WCDMA 등 신규서비스에 통신업체들이 적극 투자를 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굳이 막대한 자금이 드는 신규투자를 하지 않아도 기존 서비스 만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물론 시장전망이 어두운 것이 더욱 본질적인 이유라고 해도... 또 유효경쟁체를 위한 각종 정책은 업체들, 특히 선발사업자로 하여금 기업경영을 효율화 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할 유인요소를 막아왔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면 곧바로 규제가 뒤따르고, 효율적 경영으로 수익을 남기면 곧바로 요금인하 압력으로 되돌아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통부의 유효경쟁정책은 선발 사업자에게는 초과인윤을 보장하고, 후발 사업자에게는 선발 사업자의 바로 턱밑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를 용인해 온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 블루오션으로 가고싶지 않은 업체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다른 산업과 달리 정부의 규제가 강한 통신산업에서는 규제가 업체들이 블루오션으로 가는데 있어 암초 역할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통신산업의 큰 물줄기가 '융합(컨버전스)'이고, 당장 가장 가까이 있는 블루오션이 '융합의 마당'일 가능성이 높은데 정부 규제가 시장을 열지 못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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