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아이폰'에 사용할 낸드플래시를 중국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로부터 공급 받으려던 애플의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다. 한·중 기술 격차가 1~2년 정도로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낸드 기술력이 높아진 중국의 움직임이 이번 일로 다소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17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주요 경쟁사 대비 최소 20% 저렴한 가격에 납품이 가능한 YMTC의 메모리 반도체를 이르면 올해부터 아이폰에 탑재할 예정이었다. 또 이달 초 YMTC의 아이폰용 128단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인증을 위한 수 개월 간의 절차를 마무리했다.
YMTC가 생산하는 반도체는 주로 중국 시장에 판매되는 아이폰에 사용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에 따르면 한 소식통은 애플이 전 세계에 공급할 아이폰에 필요한 물량의 40%가량을 YMTC로부터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애플은 비용 절감과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YMTC와의 협력을 추진했으나, 최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에 나서면서 발목이 잡혔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 7일 미국 기업이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 14㎚ 이하 로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또 수출 통제 우려 대상으로 지정한 '미검증 명단(Unverified list·수출 통제 우려 대상)'도 공개했는데, 이번에 YMTC가 포함되면서 애플의 계획은 틀어졌다. 해당 명단에 오른 중국 업체들과 거래를 하려면 물품을 보내기 전에 실사를 통해 합리적인 사업인지 확인 조사를 수행하고, 당국에 추가로 허가증을 신청해야 한다.
닛케이아시아는 미국 상무부의 고위 관리를 인용해 "이 명단에 오른 기업들이 약 60일 동안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공식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수출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브렌트 프레드버그 미국 브랜즈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투자 담당 이사는 "애플은 중국 현지 시장에서 YMTC의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 규정대로라면 YMTC가 애플이 원하는 낸드플래시를 수 년간 공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단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YMTC가 낸드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애플의 선택으로 중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약진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가 전분기 대비 2.2%포인트 하락한 33.3%로 1위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2위, 20.4%)와 키옥시아(3위, 16.0%),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공동 4위, 13.0%)이 5위권에 안착했다. YMTC는 3.4%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SK하이닉스·키옥시아(일본)에 이어 세 번째 낸드 공급 업체로 YMTC를 낙점 했을 때 업계에선 다들 의아해 하는 분위기였다"며 "YMTC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비교하면 점유율도 낮고 기술력은 몇 년 정도 뒤처져 있는 수준이지만, 애플이 자사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 YMTC 제품의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해주려고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YMTC가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그 동안 빠르게 선발 업체와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의 기술 지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이는 애플의 최대 해외시장(국가 기준)인 중국에서 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일각에선 애플이 '중국 당국과의 거래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애플 내부 문서 등을 근거로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가 2016년 5월 중국 정부와 2천750억 달러(약 370조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중국산 부품·소프트웨어 적극 도입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애플의 제품 85%가 중국에서 조립할 정도로 의존도가 절대적이란 점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덕분에 애플은 연간 매출의 약 20%를 중국 시장에서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미·중이 서로 무역 보복에 나선 와중에도 지난해 4분기에는 비보(19%)·오포(17%) 등 현지 업체들을 제치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23%)를 6년 만에 재탈환했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과 YMTC의 밀월은 한국 반도체 업계 입장에선 다소 달갑진 않은 일"이라며 "YMTC가 애플을 등에 업고 중국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면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YMTC가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만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국내 업체들에겐 위협 요소로 꼽히고 있다. 2016년 설립된 YMTC는 중국 유일의 낸드플래시 양산 기업으로, 사실상 국가자본 성격인 칭화유니(지분 51%)와 중국반도체기금(24%), 후베이성(25%)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최소 280억 위안(약 6조원)의 정부 지원금이 투입됐고, 관계사로 거느린 중국 반도체 소재·장비·패키징(후공정) 회사들만 해도 수십 곳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방침에 따른 애플의 계획 차질로 '반도체 굴기'에 나섰던 중국 정부도 답답한 상황에 놓였다. 현재 낸드 시장에서 3%(1분기 기준)인 YMTC도 애플에 제품을 공급해 올해 말 5%까지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관측됐으나, 당분간 쉽지 않게 됐다. YMTC는 올해 말 2공장을 준공해 현재 월 기준 웨이퍼(반도체의 원료인 둥근 원판) 10만장을 가공하는 생산능력을 3배로 높이고, 이번 달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232단 낸드 개발을 완료해 연말부터 양산하는 등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움직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나선 이후 전량 수입해 오던 낸드플래시 독립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미국의 장벽에 막혀 쉽지 않은 모습"이라며 "애플을 앞세워 시장에 실제 제품을 공급하는 사례를 처음 만들려고 했지만 이번에 막히면서 YMTC나 중국 정부 입장에선 다소 답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YMTC의 점유율이 미미해 이번 일로 다른 업체에 영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한국 추격에 나선 중국의 움직임을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업체에는 일단 호재"라면서도 "YMTC가 당장 기술 한계로 저가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상태지만 수년 내 고가 시장에 진입해 한국 업체들을 위협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다음 세대를 겨냥한 개발에 게을리해선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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