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2007년 12월.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추진 중인 가운데 KT역시 KTF 합병과 지주회사 전환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KT가 IMT-2000과 와이브로 선정 작업에 착수할때마다 심심치 않게 합병이 거론되기는 했으나 KT가 스스로 합병 검토를 공식화한 때는 이 때가 처음이다.
12월 11일 남중수 KT 대표(사장)는 KT-KTF 합병 검토를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일 KT 조직개편과 지배구조개선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KT내 그룹전략CFT를 신설한 상태였다. 이 자리는 권행민 KT 전무가 진두지휘했다.
초기 검토는 KTF를 KT로 흡수 합병하는 방안과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양분화됐다. 이 중에서도 흡수합병으로 무게추가 기운 상태. 2008년 1월 새해를 맞이하자 KT는 더 분주하게 해당 전략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남중수 사장은 애널리스트들과 간담회를 열고 올해 경영계획을 설명하며 합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1월 25일 KT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는 유무선 통합이 대세한 시대 흐름에 따라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KT와 KTF의 합병 내지는 지주회사 설립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확인시켰다. 대체적으로 상반기내 합병 계획을 확정하고 하반기 실제 실행에 옮기겠다는 방안이었다.
2월 29일 남중수 사장이 KT 대표 연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KT-KTF 합병은 급물살을 탔다. KT로서는 민영화 3기, 남 사장에게는 2기를 맞이해 2011년까지 KT를 유무선 통합 1위 사업자로 올려세워야 했다.
특히 지난 2월 20일 정보통신부가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조건부 승인하자 KT 입장에서는 KTF와의 합병을 서둘러야 하는 당위성이 생겼다. 이에 따라 3월 3일 정식으로 대표 자리에 또 다시 오른 남 사장은 기업지배구조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로 KTF와 합병을 임기 중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KT는 차근차근 내부적인 합병 작업을 실천에 옮겼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작업은 5월 22일 KT플라자와 KTF 쇼 매장의 유통망 통합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내전산시스템도 공유됐다. 또한 IT본부를 별도법인으로 분사를 결정했다.
◆ 불어오는 외풍
KT가 KTF 합병을 추진 중인 때는 외부적으로 변수가 많은 시기였다. 우선 정권이 교체됐다. 노무현 정권이 물러나고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되는 때 였다.
아울러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정보통신부를 해체하는 역사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ICT 업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으나 정보통신부는 14년만에 4개 부처로 역할이 이관되면서 작별을 고했다. 방송통신 등 주요 현안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져가게 된다.
한국통신이라는 공기업으로 출발해 민영화를 이룬 KT로서는 이같은 외적인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부처의 등장은 곧 그 위상에 걸맞는 힘을 휘두를 수 있었다. 즉, 시장 규제와 감독 당국의 감시가 커질 것을 감안해야 했다. 앞서 SK텔레콤과 하나로텔레콤 인수에서도 보듯 경쟁사들의 반발 역시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KT는 민영화를 이루긴 했으나 정치권의 공기업 잣대가 사라지지 않아 주인없는 회사라는 오명까지도 감내해야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당대 MB의 멘토라고 불린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임명됐다. 서릿발같은 그의 면모는 당대 국회나 외부적으로도 유명세를 치루기도 했다. KT는 이에 대응해 곧장 대외 역량을 강화시켰다.
그러다보니 막상 합병 전략을 세워도 시점을 상정하기가 까다로왔다. 이같은 고민은 7월 25일 KT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맹수호 KT 재무실장(CFO)은 합병을 검토중이기는 하나 결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사실상 그룹전략CFT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전략들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 강력한 검찰 압수수색…바람 앞의 등불
올해 내 합병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KT-KTF는 별안간 큰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9월 19일 조영주 KTF 사장이 검찰로부터 출국금지 처분을 받는 한편 긴급 체포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중계기 납품업체로부터 금품로비를 받았다는 혐의였다. 이에 따라 압수수색 등 고강도 수사가 전개됐다. HSDPA를 통해 3G에서 SK텔레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겠다는 KTF 경영에 적색불이 켜졌다. 대표 부재의 KTF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처연했다.
결국 22일 조영주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이사회는 이를 수용해 조만간 새로운 대표를 추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KT-KTF 합병을 추진했던 그룹전략CFT 지휘자인 권행민 KT 전무가 앉았다. 10월 4일 정식 선임된 권 KTF 대표는 경영정상화뿐만 아니라 어려운 고난을 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검찰의 칼날은 KTF를 넘어 모기업인 KT로 향했다. 10월 6일 검찰은 KT 성남 본사와 광화문 지점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 수색에는 남중수 KT 사장의 자택인 서울 도곡동 집도 포함됐다. 업계뿐만 아니라 KT 내부적으로도 남 사장의 구속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남 사장은 대내외적인 어려움이 커지면서 결국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목디스크 수술을 끝내고 2주만에 돌아왔으나 이미 검찰의 수색 강도는 더 높아졌다.
업계 혼란은 당연지사였다. 혐의 자체는 입증이 돼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나 특별한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신빙성을 얻었다. 그 중 세간을 떠들석하게 한 추정은 현 정권의 측근이 내려온다는, 즉 ‘낙하산 인사’를 위한 사전단계라는 것. 이같은 추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치권에서 KT를 민영기업이 아닌 공기업이라는 잔상이 컸기 때문에 성립됐다. 그 진위여부는 아직까지 밝혀지진 않았으나 그 당시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상당한 파급력을 보였다.
남중수 사장까지 잃은 KT는 즉각 다른 인사를 세우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KT 사장추천위원회는 적극적으로 외부 공모를 진행하는 한편, KT의 새로운 수장 찾기에 골몰했다. 그 결과 12월 8일 최종 면접을 실시했다. 당시 면접에 나선 이들은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김창곤 전 정보사회진흥원장,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우의제 전 하이닉스 사장 등 4명이었다.
이틀날인 9일 KT 사장추천위원회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민영화 이후 사내 인사가 사장을 맡아온 그간의 관행이 깨지고 관료 출신 사장이 첫 영입된 사례로 기록됐다. 정통 행정관료 출신인 이석채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각 부처 요직을 두루 거친 바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석채 신임 대표가 과거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KTF가 PCS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KT에 사업권을 쥐어 준 당사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KTF가 KT에 흡수합병해야 하는 절차대한 상황에서 거꾸로 KT를 이끌 대표로 자리했다는 것. 실로 아이러니한 운명이다.
◆ 아이러니한 운명…이석채 사장 재등판
이석채 KT 대표 후보자가 선정되자 내외부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KT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12월 15일 경영디자인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KT-KTF 합병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과 인사 조직개편, CEO 리스크로 인한 국민신뢰 회복 등에 대한 경영 구상에 나섰다. 서유열 KT 마케팅전략본부장(상무)과 표현명 휴대인터넷사업본부장(전무) 등 약 30명이 이날 TF로 자리를 옮겼다. 이석채 후보자 역시 합병을 최우선 과제로 내년 6월까지 합병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새해가 밝은 1월 14일 이석채 KT 대표이사 사장이 정식으로 취임했다.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개최된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된 이 사장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해 취임 일성을 KT그룹 전체 생중계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 사장은 KT-KTF 합병에 저돌적인 모습을 보였다. 1월 20일 KT 이사회를 통해 합병 계획안이 승인됨에 따라 공식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했다.
KT가 KTF를 흡수합병하겠다고 발표하자 경쟁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본원적 경쟁력이 사실상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며 합병을 결사 반대했다. 이미 하나로텔레콤 인수전에서 고초를 겪은 SK텔레콤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다음이었다. SK텔레콤의 무선 지배력이 유선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논리를 그대로 맞받아쳤다. KT의 90%에 달하는 유선 지배력이 무선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소모적 마케팅 비용 경쟁으로 회귀할뿐만 아니라 일자리창출과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정부 정책에도 걸림돌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LG텔레콤과 LG데이콤, LG파워콤 등 LG 통신3형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선시장의 지배력이 이동통신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결사 항전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10조원에 달하는 자금력과 3.7배에 이르는 인력과 유통망을 보유한 KT가 90%에 이르는 가입자를 움직인다면 초고속인터넷 시장뿐만 아니라 곧 있을 IPTV를 앞세운 유료방송 시장, 이동통신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얻을 것이라 비난했다. 말 그대로 거대독점기업의 탄생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도 나섰다. 케이블TV와 인터넷 시장에서 열세였던 케이블TV 사업자 역시 KT가 유무선결함을 통해 마케팅에 적극 나서게 된다면 기반을 잃을 공산이 컸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는 방통위에 합병반대 건의문을 제출하는 한편, 공정위에도 합병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LG텔레콤도 여러 간담회를 통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석채 KT 사장은 완강했다. 독점에 대한 설명도 부실하다고 못박았다. 또한 반대의사에 대해 대응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1월 21일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아 KT-KTF 합병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는 당시 구현모 KT 그룹전략CFT 상무를 비롯한 직원들이 접수에 나섰다.
◆ 통합KT 출범…회장체제 구축
공정거래위원회도 공정거래법에 따라 경쟁제한성 여부에 대한 심사에 나섰다. 2월 4일 대회의실에서 한철수 공정위 시장감시 국장 주재로 경쟁사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다. ‘KT-KTF 합병의 경쟁제한성에 관하여’를 주제로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LG텔레콤 등이 자리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도 공정위에 합병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방통위도 미진한 서류 검토를 마치고 2월 20일부터 KT-KTF 합병심사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견수렴에 나섰다.
공정위와 방통위가 합병심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KT는 2월 24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정관변경을 승인했다. 통신전문그룹 및 재계 9위 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반영하기 위해 CEO 명칭을 사장에서 회장으로 격상시키고, 빠른 의사결정과 사업부문간 책임성을 강화하는 사내 소회사 체제 전환을 목적으로 회장 중심의 사업별 독립경영체제(CIC)로 전환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특히, 이 정관변경은 KT-KTF 합병을 전제로 결의됐다. 합병 승인이 떨어진다면 취임 2개월만에 이석채 대표는 사장에서 회장으로 올라서게 됐다.
배수진을 친 이석채 대표는 결연했다. 공정위 기업결합 승인 발표일인 2월 25일 기자간담회를 마련하고 합병을 위해 모든 카드를 다 쓰겠다고 강조했다. 경쟁사가 끈질기게 외친 필수설비 분리에 대해서도 민영화에 따라 사유재산이니 대가를 지불한다면 언제든지 공유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후 공정위 승인 결과가 떨어졌다. 공정위는 경쟁제한성이 없기 때문에 조건없이 이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적인 조건이 없기는 하나 사후 유선망 지배력이나 자금력을 활용해 경쟁사를 배제하고자 한다면 엄중 조치하겠다고 결정했다.
KT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으나 SK텔레콤과 LG텔레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아쉬움을 달래기 어려웠다.
공정위가 조건없는 허용 결정을 내리자 이번에는 방통위 결정에 모든 신경이 집중됐다. 방통위가 3월 11일 개최한 KT-KTF 합병심사 관련 공개 청문회에서는 열띈 공방이 전개됐다. 이에 따라 16일 합병심사 결과를 내려고 했던 방통위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재논의 결정을 내렸다.
3월 18일.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거쳐 KT-KTF의 합병을 조건부 승인했다. 조건으로는 전주와 관로 등 설비제공방안과 접속경로 비차별 등 무선 인터넷망 개방, 유선전화 번호이동 등이 포함됐다.
바싹 입이 말랐던 KT로서는 가뭄의 단비같은 결정이었다. 다만, 경쟁사들은 조건이 불확실하고 두루뭉실해 보다 정확한 공정경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끝으로 하릴없이 물러났다.
예고한대로 KTF는 3월 27일 이사회를 개최해 KT 합병안을 정식 승인했다. 통합 KT로의 첫발, 이석채 회장 체제가 사실상 정식 출범하게 됐다. 이 대표는 연간 20조 매출과 2조 영업익을 실현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단언했다.
이후 2009년 6월 1일 통합 KT가 정식 출범했다. 이 자리에서 KT는 글로벌 ICT 리더로 도약하는 한편, 2012년까지 KT 그룹 매출은 27조원, 영업이익은 2조6천억원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시내외전화와 초고속인터넷, IPTV를 통한 홈기반과 3G-와이브로 융합서비스로의 개인 기반, 기업을 대상으로 한 B2B 기반, 내수에서 나아가 글로벌로의 항해 등 통합IT허브 전략을 통해 이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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