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 유럽도 반도체 생산 자립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이 반도체 생산 확대에 선언에 그치지 않고 지원법 제정까지 추진하면서 국가별 반도체 주도권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유럽 반도체 법' 제정을 추진한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5일(현지시간) 유럽의회에서 "유럽 반도체 법은 유럽 내 반도체 공급 안정성을 높이고 유럽의 테크 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최첨단 유럽 반도체 칩 생태계를 공동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럽의 반도체 법은 생산 시설, 연구·개발(R&D)의 세제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반도체는 그동안 유럽, 미국 등 기업들이 만든 지식재산권(IP)을 토대로 미국의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들이 반도체를 설계하고 대만·한국 등에서 이를 생산하는 글로벌 공급망 체계를 갖췄지만,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공급난이 극심해지며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유럽도 NXP, 인피니언 등 반도체 팹리스 강자들이 있지만 생산 자립 능력을 확대해야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EU는 지난 3월 10년 안에 세계 반도체 제품의 최소 20%를 EU 내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2030 디지털 컴퍼스'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 중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는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100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과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약속하는 지원책이 담겨 있다.
중국도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재로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 향상에 사활을 걸며 지난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 왔다.
유럽이 반도체 생산 확대에 나서면서 반도체 생산 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 지고 있다. 각 국이 반도체 생산 업체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등 당근을 내밀고 있지만 이는 투자에 대한 압박이 될 수도 있어서다.
유럽의 러브콜에 적극 화답하고 있는 건 인텔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재도전을 선언한 인텔은 미국 외에 유럽에도 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인텔은 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오토쇼에서 최대 800억 유로(약 110조3천억원)를 투자해 아일랜드에 차량용 반도체 공장 두 곳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고민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 현재도 공장 증설시 홈그라운드인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여기에 유럽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벨기에 반도체 연구소 IMEC의 김민수 박사는 "코로나19로 반도체 공급난을 겪으면서 EU에서도 12인치 웨이퍼 기반의 반도체 생산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반도체 생산 자주권을 다시 가져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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