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 국내 기업 총수들의 과감한 결단이 중요해지고 있다. '조' 단위의 설비 투자, 인수·합병(M&A)으로 반도체 업체들이 덩치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과 통 큰 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승부수를 던지며 첨단 공정 도입, M&A 등 굵직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 등 공격적인 목표를 내걸었지만, 이 부회장 수감으로 투자 결정 지연과 같은 사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극자외선(EUV) 미세공정을 처음 적용한 10나노미터(nm)급 4세대(1a) 모바일 D램 양산에 돌입했다.
반도체 업계는 10나노대 D램부터 세대별로 알파벳 기호를 붙여 호칭하고 있으며, 1x(1세대), 1y(2세대), 1z(3세대)에 이어 1a는 4세대 기술이다. 1a의 회로 선폭은 10㎚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1a D램은 이전 세대(1z) 같은 규격 제품보다 웨이퍼 한 장에서 얻을 수 있는 D램 수량을 약 25% 늘릴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처음으로 EUV 공정 기술을 통해 D램을 양산한다. 10나노급 4세대 D램 생산에 EUV 공정을 적용한 건 SK하이닉스가 처음이다. EUV 공정은 EUV 광원이 기존 공정에 적용 중인 불화아르곤 광원보다 파장이 훨씬 짧기 때문에 더 미세하게 패턴을 새길 수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1월 1a D램 양산을 발표했다. 기술 뻥튀기 논란도 있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빨리 1a D램 양산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반도체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다만 마이크론은 EUV가 아닌 기존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활용해 1a D램을 생산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최태원 회장의 공격적인 투자 행보가 이같은 결실을 낳았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이 2015년 반도체산업 리더십 확보를 위해 46조원을 선제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SK하이닉스는 2018년 청주캠퍼스 M15와 올해 이천캠퍼스 M16을 세웠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10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하는 데 10조원을 베팅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2월 M16 준공식에서 "반도체 경기가 하락세를 그리던 시기에 M16을 짓는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제 반도체 업사이클 얘기가 나온다"며 "어려운 시기에 내린 과감한 결단이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미국에 170억 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증설을 발표했지만, 공장 부지는 아직 결정짓지 못했다. 굵직한 M&A 소식도 잠잠하다.
D램 1위인 삼성전자가 마이크론처럼 '처음'에 사활을 걸 필요는 없지만 경쟁사의 '최초' 마케팅이 반가울 리도 없다. 이 부회장의 부재 속에 반도체 사업에 활력이 떨어지는 양상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4대그룹 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대형투자 결정이 필요하다"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총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도 어렵고 더뎌질 수 밖에 없다"며 "메모리는 물론 시스템 반도체 정상도 노리는 삼성이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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