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빛을 빠르게 모조리 흡수하는 초흡수 현상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구현됐다. 빛이 빠르게 방출되는 초방사 현상에 대칭되는 초흡수 현상은 이론적으로는 예측됐으나 실제로 관측된 것은 처음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안경원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이 초방사 상태의 원자를 제어해 초흡수 현상을 실험적으로 구현해냈다고 밝혔다.
안 교수 연구팀은 나노구멍 격자와 위상 제어 레이저, 공진기 등으로 구성된 특수한 실험장치를 고안해 초흡수 현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빛을 보통보다 더 빠르고 완벽하게 흡수하는 초흡수 현상이 가능하다면 식물의 광합성이나 태양전지에서의 빛에너지 수확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광자를 이용한 양자정보처리의 효율향상이나 천체관측을 위한 미세한 광신호 감지 등에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는 광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 온라인판에 3월 2일 게재됐다.
◆"초방사가 있으면 초흡수도 있을 것"
1954년 미국의 물리학자 디키(Robert H. Dicke)는 밀도가 높은 원자 들에서 빛의 방출속도가 원자 수의 제곱에 비례해 빨라지는 현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예측하고 이를 초방사(superradiance)로 명명했다.
일반적인 방사의 경우 각각의 원자에서 개별적으로 방출된 빛들이 서로 보강간섭과 상쇄간섭을 일으키면서 방출된 빛의 세기가 줄어들게 된다. 반면 초방사 상태에서는 원자에서 방출된 빛들이 서로 보강간섭을 일으키며 강한 빛을 방출한다. 이러한 현상은 밀도 높은 원자, 원자/이온 포획, 초전도체 회로 등의 다양한 시스템에서 관측됐다.
초흡수(superabsorption)는 초방사(superradiance)에 대응하는 말로 탄생했다. 이론적으로는 초방사를 일으킬 수 있는 초방사 상태의 원자들은 초방사 뿐만 아니라 초흡수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초방사 상태로 원자를 준비한다고 해도 원자들이 빠르게 초방사를 일으켜 빛을 방출하기 때문에 초흡수를 관측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양대호 박사(서울대, 現 삼성종합기술원)는 "물리학에서 빛의 흡수와 방출은 항상 짝지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떤 시스템에서 빛의 방출은 있는데 흡수가 없는 현상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초방사에 대해 연구하던 중 이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초흡수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초방사 상태의 원자들이 빛을 방출하지 않고 빛을 흡수할 수 있도록 원자와 광자의 상태를 제어해야 한다. 연구팀은 초방사현상과 초흡수현상이 동일한 상태의 원자들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서로 시간 역과정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초방사 상태의 원자들을 제어해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 빛을 빠르게 흡수하는 초흡수 현상을 실험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시간역행을 위해서는 원자상태의 위상을 제어하는 기술이 이용됐다. 체스판 모양의 나노구멍 격자를 통과한 일부 원자들을 초방사를 일으킬 수 있는 상태(양자역학적 중첩상태)로 만들고, 수학적으로 이 원자상태의 위상에 반대되는 위상의 빛을 공진기 내부에 준비했다. 초방사 상태의 원자가 반대 위상을 가진 빛과 만나 초방사를 되돌린 초흡수 현상이 일어나도록 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실험장치를 통해 초흡수가 일어날 때 시간에 따른 빛의 세기 변화와 이러한 빛의 세기가 원자의 수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한 결과 일정시간 동안 흡수된 빛의 양이 원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실제 10개 정도의 원자로 초흡수 현상을 구현해, 일반 흡수보다 10배 정도 빠르게 빛을 100% 흡수하는 것을 관측했다. 특히 빛의 세기가 약할수록 일반흡수보다 흡수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것이 관측돼 광신호처리, 천문관측 등에서 약한 빛을 측정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빛 에너지 수확, 양자정보처리 효율 획기적으로 높인다
초흡수는 이론적으로만 예측됐던 현상으로 이를 실험적으로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빛의 흡수현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기 때문에 빛의 흡수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폭넓은 응용을 기대할 수 있다.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나 화학 에너지로 전환하는 에너지 수확 분야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매우 약한 신호의 감지에 탁월하기 때문에 광신호 처리, 천문관측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양대호 박사는 "초흡수 과정에서 빛의 위상이 원자 양자중첩상태의 위상으로 전이되기 때문에 양자 메모리 및 양자 인터페이스 등에 응용되어 양자정보처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실용화를 위해서는 공진기 내부에서가 아닌 자유공간과 같이 다른 환경에서도 초흡수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며 원자상태를 제어할 수 있는 실험장치를 벗어난 자유공간에서의 초흡수 현상 구현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사업과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내용 설명 동영상 링크 : youtu.be/24DHRGn9x-I
◇논문명 : Realization of superabsorption by time reversal of superradiance (DOI: 10.1038/s41566-021-00770-6)
◇저자 : 안경원 교수(교신저자/서울대학교), 양대호 박사(제1저자/서울대학교, 현 삼성종합기술원), 오승훈, 한준석, 손기범, 김진욱(이상 공동저자/서울대학교 박사과정), 김준기 교수(공동저자/듀크 대학. 현 성균관대학교), 이문주 교수(공동저자/포항공과대학)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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