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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손정의 생각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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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이 회사 완전히 회장님이 좋아할 만해."

지난 2006년 소프트뱅크에서 인수·합병(M&A)팀을 이끌던 니키 가츠마사는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암(ARM)'에 대해 조사하며 이같이 생각했다.

암은 소프트뱅크가 2016년 약 35조원에 인수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다. 전세계 스마트폰의 95%가 암의 기술을 쓴 AP를 쓰고 있어 업계에선 '그림자 거인'으로 불린다.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도 인수 욕심을 냈던 회사다. 그러나 손정의 회장은 암의 영향력이 미미했던 10년 전부터 암을 주목하고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기업 인수를 준비해왔다.

손정의 회장이 지시했을 때만 해도 '암=듣보잡'이라 생각했던 니키는 곧 손정의 회장이 암에 매료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암의 비즈니스 모델에는 손정의 회장이 늘 강조해온 '독점 체제'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은 기존 반도체기업과 달리 생산이 아니라 설계에 특화된 기업으로, 설립 당시 틈새시장이었던 모바일에 주목했다. 덕분에 오늘날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아울러 손정의 회장은 '플랫폼'에 관심이 높다. 그에게 플랫폼이란 게임의 규칙을 지배하는 곳으로, 어떤 시점과 시장점유율에 도달하면 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수확체증형 성장 모델(생산요소를 증가 투입시키면 생산물이 지속적으로 느는 구조)을 따른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이익이 2차 함수곡선을 그리며 어느 시점부터 무섭게 늘어난다. 손정의 회장이 암에 35조원을 베팅한 이유다.

갑자기 소프트뱅크의 암 인수 배경을 되짚어보는 이유는 쿠팡에 또다시 거액을 투자한 손정의 회장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 해서다. 최근 쿠팡은 소프트뱅크로부터 3년여 만에 2조2천570억원을 유치해 국내 유통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국내 인터넷기업이 유치한 투자 금액 중 사상 최대다. 쿠팡을 1조8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기업으로 여겼던 업계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했다.

손정의 회장은 투자 배경으로 "김범석 쿠팡 대표가 보여준 비전과 리더십은 쿠팡을 한국 이커머스 시장 리더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손 회장의 설명 중 후자엔 이견이 없지만, 전자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쿠팡의 매출은 놀랍게 증가했지만, 그만큼 불어나는 적자는 쿠팡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 했다.

그런데 손정의 회장은 지난 5일 2분기 결산 발표 설명회에서 혁신기업 사례로 '위워크'에 이어 쿠팡을 2번째로 소개하며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결국 서점으로 달려가 스키모토 다카시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가 쓴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을 사들었다. 물론 책 한 권으로 손정의 회장의 생각을 다 알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힌트를 얻을 순 있지 않을까.

그가 강조했던 '독점체제'와 '플랫폼'은 쿠팡의 사업모델에서 발견되는 부분이다. 특히 벤치마킹이 빠른 국내에서 물류와 배송을 근간으로 한 쿠팡의 사업모델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고 있다. 한때 로켓배송을 따라잡겠다며 이커머스사들이 앞다퉈 '직배송'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사실 쿠팡의 사업 모델은 2~3년 내 승부를 보겠다는 근시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물류·배송사업이라는 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규모의 경제' 효과로 이익이 급증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더욱이 최근 쿠팡은 신규 택배 운송사업자로 선정되며 위탁상품까지 배송할 수 있게 돼 규모의 경제 효과를 앞당길 수 있게 됐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 또다시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 역시 쿠팡이 규모의 경제를 통한 이익 창출 구간에 근접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신에 따르면 애초 소프트뱅크는 쿠팡에 소규모 투자를 고려했으나, 쿠팡의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금을 몰아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투자 자문위원이자 이사회 멤버인 리디아 제트(Lydia Jett)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쿠팡은 수익성을 내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쿠팡이 가까운 시일 내 핵심 사업 부문에서 수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며 "쿠팡은 당초 2019년 공모를 고려했지만, 이번 투자로 공모는 더욱 장기적인 목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쿠팡의 IT DNA, 손정의 '군(群) 전략'에 딱 맞아

아울러 손정의 회장은 투자를 통한 '군(群) 전략'을 강조한다. 즉, 손정의 회장에게 각각의 투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업 간 시너지를 통해 강력한 '서러브레드(영국의 재래 암말과 아라비아의 수말을 교배해 탄생시킨 품종)'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이를 위해 손정의 회장은 비전펀드를 만들었고, 최근 2년간 인공지능(AI)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해왔다.

쿠팡에 힘을 보탠 것도 이 비전펀드다. 현대 사회에서 이커머스는 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IT기술의 집합체인 데다, 쿠팡은 직원 40%가 개발자일 정도로 IT역량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비전펀드 투자 대상에 쿠팡이 포함된 점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물론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이라는 책도 손정의 회장의 투자 결정 기준에 대해선 끝끝내 밝히지 않았다. 분명한 건 단기간 성장에만 급급한 한국식 경영 전략은 분명 손정의 회장의 마음을 훔치지 못할 터이다. 이제야 "우리는 다른 길을 간다"는 쿠팡의 일관된 변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회사, 완전히 회장님이 좋아할 만하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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