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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감독원의 체면과 소비자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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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보호, 기관-사기업 '자존심싸움'으로 번져선 안 돼

[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보험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혹시라도 큰 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차 사고가 나면 어쩌나, 내가 죽고 나면 우리 가족들은 누가 먹여 살릴까. 그래서 돌려받는 보험금이 최우선 관심사다. '남들보다 덜, 받기로 한 돈보다 덜'이라는 인식은 소비자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쟁은 '덜 받는다'는 불안감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일부 소비자가 즉시연금 상품을 판 보험사가 약관에 사업비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았다며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분쟁조정위원회가 지급 결정을 내리자 금감원은 한술 더 떠 해당 사례자 모두에게 미지급금 전액을 돌려주라고 요청했다. 16만명, 금액으로는 1조원이다.

금감원의 자존심과 보험업계의 입장이 뒤엉켜 갑론을박도 치열했다. 보험사들은 약관 부속서류에 산출방법서를 포함했거나 약관 자체에 사업비를 명시했다고 반박하며 전액 지급을 거절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소송 지원으로 맞불을 놨다.

다툼의 초석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소비자보호 기조다. 윤석헌 원장은 지난 7월 취임 직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를 강조했다. 이달 16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는 은행과 보험을 비교했다. 그는 "은행은 2%를 이자로 주고 나머지로 사업비를 충당한다. 그런데 보험은 경비 충당을 먼저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의 사정은 다르다. 은행은 수신 기능으로 튼튼한 재원을 갖추고, 이 재원으로 주수입을 얻는다. 수신 기능 없이 보험료로 투자를 운용하고 보험계약 기준이 충족되면 몇 배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사가 돌려줄 금액과 명분은 구분될 수밖에 없다.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떼어 내 원금이 깎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은행의 예·적금에서도 예대마진이 사업비로 빠지는 셈이다.

보험사가 과중한 사업비를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면 분명 문제다. 다만 이번 즉시연금 미지급금 다툼이 소비자보호가 아니라 기관과 사기업의 기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소비자 불안에 편승한 주도권 쟁탈전은 더더욱 안될 일이다. 일괄구제의 명분은 행정낭비이지만 다툼이 깊어질수록 다른 곳에서 행정력이 누수될 수밖에 없다.

우선 법정다툼 기간이 만만치 않다. 보험업계와 법조계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싸움을 내다봤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의 거울 격이라는 자살보험금도 1년 이상의 법정공방을 벌였다.

법이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보험업계와의 법정다툼에서 진 뒤 과징금과 CEO징계 등의 카드를 꺼내 보험업계를 압박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험업계가 수천억원대의 보험금을 지출하기로 결정한 다음에야 징계 수위를 다소 낮췄다. 기싸움 끝 본보기성 징계가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보험업계는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이 자살보험금 사태의 데자뷔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윤석헌 원장이 "금융회사와 고객 관계이니 우리는 권고할 따름이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불가능한 상상도 아니다.

보험사는 불의의 사고에 민감하다. 불의의 사고가 잦을수록 손해율이 치솟기 때문이다. 높은 손해율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보험 계약 한 건 한 건의 사고도 그럴진대, 몰아닥친 금융 규제는 더욱 그렇다.

금융당국은 지급명령 불복 소송에도 불이익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즉시연금 미지급금 불복결정이 나자마자 소송 지원과 신속처리반 가동 계획을 알렸다. 그만큼 금융당국이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인이다. 즉시연금 미지급금 논란의 중심은 소비자보호라는데 들리는 이야기는 '강공' '기싸움' 등 자존심 다툼에 가깝다. 소비자보호라는 대의 속 무게 추는 되려 '체면'으로 기운 게 아닐지 되돌아볼 때다.

허인혜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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