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닐 텐데
그를 보겠다고 힘들게 먼 길까지 왔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하고
그는 불쑥 이 말을 내뱉었다.
“바쁜데 뭐 하러 왔어요.”
그것도 퉁명스럽게.
그와 그의 아버지와의 둘만의 시간.
짧은 대화, 긴 침묵.
짧은 눈빛, 긴 어색.
짧은 공감, 긴 대립.
“그래, 잘 지내라.”
멀어져가는 아버지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그에게 손을 흔든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 날 저녁, 눈이 왔고 길은 얼었다.
잘 도착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끝내 그는 아버지께 전화하지 않았다.
그게 아닌데.
분명 마음은 그게 아닐 텐데.
김이율(dioniso1@hanmail.net)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가슴이 시키는 일」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냈으며 현재는 <김이율 작가의 책쓰기 드림스쿨>에서 책을 펴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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