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훈기자] '최강의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알파고가 인간만이 앉을 수 있었던 바둑 왕좌에 앉았다.
1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즈호텔 특별대국장에서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 3국은 이세돌 9단이 176수 만에 알파고에 불계패를 당했다. 이로써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3대0 스코어로 알파고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세돌 9단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전에 열렸던 기자간담회에서는 '5대0 승리' 또는 '4대1' 승리를 자신했었다.
그러나 이번 대국을 포함해 알파고가 보여준 실력은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프로 대국 기사들조차 '실수'라고 판단했던 수마저 알파고의 계산된 수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인간의 바둑 수준을 완전히 넘어섰음을 보여줬다.
◆이세돌 9단의 모든 수를 차단
지난 9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제 1국은 치열한 전투 바둑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이세돌 9단의 수에 차분하게 맞섰고 30수에서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를 두며 '실수'로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후에는 불리한 형세를 우변 급습으로 위기를 타개하는 모습을 보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를 두고 프로기사 박정상 9단은 "알파고의 우변 급습은 인간이라면 거의 두지 않을 수"라며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깜짝' 한 수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알파고는 제 2국에서 그동안 화점으로만 출발했던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소목(3선과 4선 교차점)에서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제 2국 역시 이세돌 9단이 마지막 1분 끝내기에 몰릴 때까지 몰아쳤지만 알파고는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지막 제 3국은 이세돌 9단도 철저히 준비를 했지만 결국 인공지능에게 승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3국은 초반부터 치열한 난타전을 유도했지만 알파고는 시작부터 우하귀 화점으로 대응을 하면서 놀라움을 안겼다. 이 역시 인간의 바둑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수였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은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수를 펼치며 알파고를 압박했지만 번번이 수비에 막혔고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하변 공략으로 선회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이세돌 9단은 마지막까지 불리한 형세를 뒤집지 못했다.
◆인공지능, 인간 왕좌 빼앗다
이세돌 9단의 세계 랭킹은 현재 중국의 커제 9단, 한국의 박정환 9단, 일본의 이야마유타 9단에 이어 4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여전히 국내 상금 랭킹 1위(14억원)에 랭크된 이세돌 9단은 지난 10년간 세계 대회에서 18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실공히 바둑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특유의 공격적인 바둑으로 불리한 형세를 타개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투바둑의 1인자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은 제 3국 시작 전 '나만의 바둑'을 두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대국에 임했다. 초반부터 거친 싸움을 유도하며 맹공을 퍼부었지만 인공지능 알파고의 수비력은 그 이상이었다.
바둑은 흑돌과 백돌을 바둑판 위에 번갈아 두며 '집'을 많이 짓도록 경쟁하는 게임이다.
4천년 넘은 역사를 지닌 바둑은 수없이 많은 기보를 만들어 내며 인간과 역사를 함께해 왔다. 바둑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이를 계산해 인간의 바둑을 뛰어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조차 한 때는 "인공지능이 바둑의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을 불가능하고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로 바둑은 인공지능에 있어 미지의 영역이었다.
실제로 매년 인공지능끼리 펼치는 바둑 대회에서 우승한 인공지능도 매번 프로 기사와 대전할 때는 핸디캡 없이는 이기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 판 후이 2단과 대국을 펼칠 때만 해도 이세돌 9단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세돌 9단 역시 당시의 알파고의 기보를 기반으로 "나와 실력을 논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며 완승을 자신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만에 알파고는 비약적인 실력 상승을 보이며 결국 인간 바둑 최고수마저 꺾었다.
◆구글, 인공지능 승리 위해 철저한 준비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의 최적의 착수 확률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존 인공지능은 40%대에 머물러있지만 알파고는 57%를 기록했다.
알파고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48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8개의 그래픽연산처리장치(GPU)로 구성돼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을 상대할 시점에는 CPU 1천202개에 GPU 176개로 100배 가까이 업그레이드 됐다.
GPU 1개는 평균적으로 CPU 10개에 해당하는 성능을 지녔기 때문에 3천여 개에 가까운 CPU를 장착하고 이세돌 9단과 맞선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현재 실력'을 기보 분석을 통해 샅샅이 분석한 후 대전에 들어간 반면, 이세돌 9단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인간의 1천년의 세월에 해당하는 연습량을 4주 만에 소화할 정도로 시뮬레이션 능력도 탁월하다. 판 후이 2단을 상대하기 전에는 유럽 아마추어 선수들의 기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훈련해 판 후이 2단을 뛰어넘었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판 후이 2단과 겨뤘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5개월 만에 이정도 실력을 키우려면 인간은 천재라 해도 10년 이상 걸린다"며 "알파고는 인공지능의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것 같다. 다른 인공지능과 너무나도 다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세돌 9단과 맞서기 전에는 프로 기사들의 기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훈련해 결국 이세돌 9단마저 뛰어넘은 것이다.
◆알파고, 다음 도전은?
인공지능의 미지의 영역이었던 바둑을 정복한 알파고의 다음 과제도 세간의 관심거리다.
다음 도전 과제는 '스타크래프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구글 딥마인드 개발자 제프 딘이 내비쳤기 때문이다. 다만 '가능성'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는 상태다.
지속적으로 인간의 영역을 넘보고 있는 알파고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한편, 이세돌 9단은 승패와 상관없이 오는 14일 오후 1시, 15일 오후 1시에 알파고와 2번의 대국을 펼치게 된다.
성상훈기자 hns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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