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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병 보증금 인상' 잡음…업체만 '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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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유예 홍보 부족, 사재기 극성…빈병 수급 어려움 가중

[장유미기자] #지난 21일 오전 11시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만난 김지윤(22)씨. 이날 부터 빈병 보증금이 인상되는 것으로 알고 그 동안 모았던 소주병과 맥주병을 갖고 마트에 들렀다 얼굴만 붉혔다.

마트 직원이 "빈병 보증금은 오늘이 아니라 내년 1월부터 인상된다"며 인상된 금액으로 보증금 지급을 거부한 것.

이날 롯데마트 서울역점에는 인상된 보증금을 요구하며 빈병을 가져온 이들이 김 씨 외에도 4~5명 더 있었다. 모두 소주·맥주 빈병 보증금이 이날부터 인상됐다고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달 21일부터 빈병 보증금을 인상하려던 정부 계획이 내년으로 1년 유예됐지만 이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일반 소비자들이 잘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며 "빈병 사재기 현상도 여전히 심해 지방 중소 주류업체의 경우 빈병 회수가 어려워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 경북 주류업체 금복주는 최근 빈병 회수율이 급락했다. 지난 2014년까지 연간 95% 안팎을 기록했던 빈병 회수율은 지난해 전체 평균 75%까지 뚝 떨어졌다. 지난해 9월 규제개혁위원회가 소주 빈병 보증금을 인상키로 결정하면서 빈병 회수율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복주는 평소 주당 40시간 정규 조업, 주문 물량에 따라 야근 10시간을 했지만 빈병 부족으로 지난해 말부터 야근이 중단됐다. 소매업체들의 제품 주문에도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선별적으로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갈팡질팡' 정부…"소비자·업체 혼란 가중"

정부가 보증금 인상 계획을 내놓은 것은 빈병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소주병은 40원에서 100원,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빈병 보증금을 인상하면 소비자들이 많이 반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류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도매상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빈병이 더 많아 정부의 기대만큼 소비자들의 참여율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가격 부담 요인이 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맞섰다. 결국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제도를 재심사, 빈병 보증금 인상안을 내년으로 늦췄다.

업계 관계자는 "빈병 보증금 인상이 1년 유예됐지만 정부가 이를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됐다"며 "빈병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주류 생산업체들의 피해도 크다"고 말했다.

현재 금복주 외에도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 역시 빈병 회수율이 80%대까지 떨어졌다. 다른 소주업체들도 70% 중후반대로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롯데주류는 빈병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맥주업체들도 빈병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맥주업체 A사는 정부 발표 전 가정용 기준 95%를 웃돌던 빈병 회수율이 현재 6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다만 캔과 병 비율이 각각 50%를 차지해 소주업체보다 피해가 덜 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제도 개선에도 업계 '시큰둥'…"효과 없어"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정부는 빈병 사재기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21일부터 빈용기보증금 제도 지원방안을 담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에 들어갔다. 또 상반기 중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를 제정해 빈병 사재기 행위를 단속하고 위반 시 처벌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올해 말까지 '자원재활용법'을 개정해 빈병 사재기에 따른 부당이익을 취했을 경우 몇 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도입한다. 또 라벨을 위조해 구병을 신병으로 둔갑시키는 경우 형법상 사기죄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을 적용, 처벌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러나 주류업계는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정부 빈병 보증금 인상을 하기로 확정한 상태에서 유예한 것은 사재기 기간만 더 늘려 업체들의 어려움만 더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21일부터 환경부가 빈병 사재기 등에 대한 단속에 들어간다고 발표했지만 이날 빈병 회수율은 여전히 70%대에 머물고 있다"며 "가지고 있을수록 병당 수수료가 더 생긴다고 생각한 이들이 빈병을 잘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빈병 수수료 인상안이 폐지된 것도 아니고 확정된 상태에서 1년 유예되면서 빈병 수급이 어려운 제조업체들이 새 병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원가 비용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부담만 더 늘어난 형국이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정부의 인상안 발표 전에는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빈병 회수가 잘 이뤄지고 있었다"며 "정부가 소주와 맥주 가격의 인상만 부추긴 꼴"이라고 강조했다.

◆취급수수료 갈등…'제2의 빈병 부족 사태' 부추기나

주류업체들은 주류판매상들과 취급수수료 인상 문제로도 갈등을 빚으며 '제2의 빈병 부족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과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류판매상들이 빈병 회수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류 판매상들은 현재 수거비용 현실화에 맞게 수수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주류회사들은 인상 수준이 과도해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이 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현재 취급수수료는 소주병 16원, 맥주병 19원인 반면, 주류판매상들은 인건비, 보관비 등을 포함해 각각 46원, 55원으로 인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수수료를 33원으로 인상할 계획이었지만 규제개혁위원회가 업계 자율로 결정하라고 권고해 양측의 협상 회의가 진행되게 됐다. 2차 회의는 오는 29일 실시할 예정이다.

한 주류판매상은 "이번 인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빈병 거부에 나설 계획"이라며 "7월부터 빈병을 받지 않으면 300만 원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하지만 이것도 감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일 리큐르' 인기 시들…빈병 수급 '악영향'

일각에서는 소주업체의 경우 빈병 수급이 어려운 이유로 '과일 리큐르 열풍'이 시들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과일리큐르 인기로 한 때 업체들이 생산물량을 쏟아냈지만 판매율이 떨어지면서 재고가 쌓여 빈병 회전을 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A 대형마트의 전체 소주제품 중 과일리큐르 매출 비중은 지난해 7월 16.59%까지 치솟았으나 9월 7.21%, 10월 7.28%, 12월 5.4%까지 떨어졌다. B 편의점 역시 지난 6월 22.0%를 기록했던 과일리큐르 매출 비중은 점점 감소해 올해 1월 10.5%까지 낮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빈병수집업체들이 최근 수거하는 빈병 중 과일 리큐르 제품을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많다"며 "'자몽에이슬'이나 '순하리 처음처럼 사과' 정도만 판매되고 있고 나머지 제품은 추가 주문도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소주와 동일한 병을 사용하는 과일 리큐르 제품이 판매되지 않으면서 빈병 수급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내년 보증금 인상을 앞두고 시간이 지날수록 빈병 사재기도 심해져 올 연말 업체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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