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례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지 10일로 1년이 됐다.
삼성은 지난 1년 이 회장의 건강문제에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악화까지 겹쳐 말 그대로 비상상황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IMF 이후 첫 역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수술 뒤 상태가 호전됐지만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태여서 경영공백의 장기화도 우려되는 상황. 이를 대신할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이 시험대에 선 셈이다.
그리고 1년.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놓으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올 뉴 갤럭시'를 표방한 갤럭시S6는 역대 갤럭시 시리즈 흥행기록을 갈아치울 판이다.
삼성 안팎의 위기가 몰고온 변화의 파고도 가파르고 거셌지만 사업재편, 경영진단 및 인력 재배치 까지 삼성 사업구조의 새판짜기를 통해 턴어라운드의 발판도 다졌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공백을 대신해온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론도 한층 힘을 받고 있다.
◆경영전면서 해결사 역까지, 광폭행보
갤럭시S6의 흥행 배경에는 실적 악화로 교체설에 시달렸던 신종균 IM부문 사장을 유임시키는 등 이 부회장의 뚝심과 승부사적 기질도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시장 경쟁 격화로 실적이 주춤해진 IM부문 수장을 재신임함으로써 반격의 기회를 살렸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위기를 맞은 삼성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며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 대한 일각의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1년간 각국 정상, IT업계 수뇌부 등과의 폭넓은 교류는 물론, 필요하다면 현지로 날아가 협력 확대 및 사업 논의를 구체화하는 등 경영전면에서 현안들을 챙겨온 것.
지난해 팀 쿡 애플 CEO, 사티아 나델라 MS CEO와 잇단 회동 뒤 수년을 끌어온 애플과의 미국 소송과 MS와의 특허전을 끝낸 게 대표적인 예다. 애플과의 특허전은 미국 외 기타 국가에서도 사실상 마무리 수순으로 알려졌다.
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조 케저 지멘스 회장, 지나 라인하트 호주 로이힐 회장,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미국 카드사 CEO 등과 만나 IT 분야는 물론 플랜트 및 자원개발, 금융까지 각 계열 글로벌 사업 확대를 이끌기도 했다.
병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 경영자로 국가간, 산업간 협력 등의 지원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방한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왕양 중국 부총리,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당 서기장과 잇달아 만나 양국 협력과 사업 기회를 다진 것.
시 주석과는 이후 난징 유스올림픽 개막식과 보아오 포럼에서 두차례 더 만나기도 했다. 또 지난 연말에는 중국 베이징 중난하이를 찾아 중국 경제 담당인 마카이 부총리와 면담, 현지 사업 협력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해 냈다.
◆ 힘받는 이재용 체제, 경영승계 시기 '촉각'
과거 이 회장의 뒤에서 조력자 역할에 충실했던 것과는 달리 경영전면에서 빅딜이나 신사업을 직접 챙기는 등 광폭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화학과 방위사업을 한화 측에 매각하는 2조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키며 그룹의 오랜 숙제였던 방위사업 매각의 결실을 맺었다.
최근에는 당초보다 1년 앞당겨 평택에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도 착수했다. 이 곳의 1단계 투자규모만 15조원에 달한다. 인텔을 넘어서 세계 반도체 1위 달성의 야심찬 첫발을 내딛은 것.
삼성이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보상 협의, 국내에서 LG와 벌이던 각종 소송을 마무리 짓는 등 묵은 과제들을 털어내고 있는 것도 이 부회장의 결단이 컸다는 후문이다.
삼성의 신수종 사업 등 성장동력 마련에는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 초 중국 보아오 포럼에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의료, 관광, 문화 산업을 꼽고 "삼성은 IT, 의학, 바이오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들 사업에 의지를 보였다.
삼성이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 및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혁신 수혈 등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는 최근 1년간 미국 모바일 결제업체 루프페이를 비롯해 총 8개 회사를 사들였다. 지난 5년간 삼성그룹 전체 M&A가 14건이었음을 감안하면 1년새 절반 이상의 M&A가 이뤄진 셈이다. 과거 M&A에 소극적이던 삼성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서면서 글로벌 광폭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특허 갈등 해결이나, 신수종 사업을 챙기면서 삼성전자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등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이 부회장의 역할론이 힘을 받으면서 '이재용 체제'의 연착륙 가능성도 커졌다. 후계구도를 염두한 작업 역시 상당부분 마무리,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계열간 합병 및 지분 매각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본격화 했다. 이는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SDS와 제일모직(옛 에버랜드) 상장으로 사실상 일단락된 분위기. 일각에서 거론되는 지주사 전환 없이도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삼성측은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 시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 회장이 와병중인 만큼 무리하게 시기를 앞당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그러나 시기가 언제냐일 뿐 경영승계는 절차상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 공백 등 경영의 불확실성을 최소화 하는 측면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가 무르익었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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