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석기자] 정유업계의 갑오년 한 해는 위기로 시작해서 위기로 저물었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셰일가스 개발 열풍은 해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산업의 기초원자재이자 주요 수출원이었던 석유산업의 위상을 흔들어놨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산업 수요는 줄어드는데 국내 정유업의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의 정제설비는 늘어만 가고 있다.
수요가 감소하는데 공급은 늘고 있으니 유가 급락은 필연적이다. 지난 2분기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던 국제유가는 50달러대로 반토막 났다.
정유사들의 정제마진(원유 수입 가격에서 완성된 석유제품 가격을 뺀 수치)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인 만큼 이제는 실적 부진 차원을 떠나 업종 존폐의 문제다.
◆"보너스마저 못 챙길 상황"
올해 정유업계는 산업계가 주목할만한 사건 및 이벤트는 없었다. 그러나 만성적 수익성 악화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세계 경기 불황 및 셰일가스 열풍 등이 정제마진 감소를 유발하고 환율 하락으로 수출도 둔화되면서 국내 주요 정유사들의 실적부진은 지난 2013년에 이어 올 초에도 지속됐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67.5% 줄어든 2천억원대를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는 영업손실로 전환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2분기를 기점으로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정유사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적악화에 따라 사업 및 조직 통페합, 인력 구조조정, 예산 삭감 등의 개혁작업을 실시했다. 업체마다 10∼20%의 조직 통폐합을 단행했고 예산도 20∼30% 삭감했다. 물론 이런 작업들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지표인 국제유가마저 올 초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다가 지난 7월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지난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로 현재는 50달러 후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통상 정유사가 해외에서 원유를 구입해 국내에서 정제하는 데는 두어 달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는 두 달 전 원유를 100달러에 구입했다면 정제과정을 마친 두 달 후에는 50달러로 판매하거나 수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비록 3분기는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 모두 적자폭을 줄이거나 흑자전환에 성공하긴 했으나 이런 상황이면 4분기는 물론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정유 4사(현대오일뱅크 포함)는 지난 2012년 영업이익률 -0.3%, 2013년 0.0%, 올해 1∼3분기 -1.1%로 계속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1~3분기 적자폭은 9천711억원으로 1조원 돌파를 눈 앞에 둔 상태다.
연말 송년회도 취소됐고 GS칼텍스나 에쓰오일 등은 연말은 물론 내년 성과금마저 미지급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포트폴리오 확대 및 비용절감 노력
정유업계의 분위기는 전적으로 외부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인 만큼 이런 상황에 정유사들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정유사가 할 수 있는 수익성 방어책은 제품과 설비의 고부가가치화 및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비용절감 등이다.
업계 맏형인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신성장 사업을 발굴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전담하는 PI(Portfolio Innovation)실을 신설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또한 SK에너지·SK종합화학 등 자회사별로 전략본부를 신설해 대외 경영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사업 경쟁력 제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노동조합과는 이미 내년 연봉 동결까지 타결한 상황이다.
이미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마친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비용절감과 고부가 제품 다각화 등을 통해 불황 탈출을 꾀한다.
GS칼텍스는 이미 원유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영국 런던과 UAE 아부다비에 지사를 두고 싱가포르에도 법인을 설립했다. 또한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해 첨단소재인 탄소섬유 및 바이오부탄올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에쓰오일의 경우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내년 산화프로필렌(PO) 사업에 진출한다. 같은 목적으로 현대오일뱅크도 최근 대산공장 준공으로 윤활유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카본블랙 사업에도 진출한 상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세계 경기 불확실성 및 유가하락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업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내년부터는 정부도 적극적으로 유가하락 등에 대응할 예정인 만큼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광석기자 hov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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