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통일 후 금융정책과제에 대한 윤곽이 나왔다.
낙후된 북한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통일 후 북한 개발에 필요한 재원은 약 5천억달러로 예상됐고, 이 가운데 주요 인프라, 산업 육성에 약 1천75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다.
19일 열린 '한반도 통일과 금융' 콘퍼런스에서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정책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통일은 한국 경제에 유사 이래 최대의 기회로, 앞으로 공허한 통일 논의는 지양하고, 금융부문에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며 이른바 '통일비용' 예상치를 이 같이 내놨다.
북한개발에 들어갈 5천억달러는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정책금융기관과 민간투자자금, 그리고 북한 자체 창출 재원을 통해 20년간 나눠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초반에는 양허성 해외자금이나 정책금융기관의 자금을 쓰고, 이후 국제기구나 국내외 민간자금을 활용한 뒤, 막바지에는 민간주도의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이번 발표 내용은 통일에 대비해 생산적인 통일 논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작성한 것으로, 아직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니다.
신 위원장은 우선 해외 ODA로는 170억달러의 개발재원을 확보하고, 국내 정책금융기관에서는 2천500억~3천억달러를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외 ODA의 경우, 미국, 일본, 중국, 독일 등 해외국가에서 14억달러를 지원받고,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연합(UN) 등 국제기구에서 156억달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국내 정책금융기관에서는 정부가 예상한 개발재원의 절반 가량인 2천500억~3천억 달러를 조달하는 것으로 잡았는데, 이렇게 할 경우 정책금융기관은 정부 출자액의 8~10배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할 수 있어 재정부담이 적다는 판단이다.
또 정책금융기관이 사업 선별능력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개발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고, 민간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해 투자가 유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신 위원장은 민간투자자금으로는 1천72억~1천865억달러, 북한지역의 세수와 자원개발 이익 등으로는 약 1천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1천72억~1천865억달러로 잡은 민간투자자금은 수익성이 확보된 프로젝트, 경제특구개발 등을 통해 유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통일 후 북한 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 비율 목표를 베트남(4.6%)과 불가리아(8.0%) 사이의 수준으로 설정해 계산했다.
통일 후 북한에서는 경제개발과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따라 20년간 약 3천300억달러의 세수가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 가운데 1천억달러를 개발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금액은 최초 10년간 연평균 8%, 이후 10년간 연평균 10% 성장, 한국 세율(26%)를 가정해 산출한 것이다.
신 위원장은 이렇게 확보한 개발재원을 단기간 북한경제의 생산성 도약을 이끌 수 있는 분야에 집중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발전가능성이 큰 지역을 선별해 공공성이 큰 인프라와 산업 부문에 우선 투자하고,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부문에 집중 지원한다는 생각이다.
◆금융시스템 구축은 어떻게?
한편, 안정적 경제통합을 위한 금융시스템 구축방안으로는 현재 북한이 운영중인 '중앙집중체제'를 '가격중심 시장체제'로 전환하되, 초기에는 직접금융보다는 간접금융 육성에 정책역량을 집중하면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나간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먼저 상업은행(CB)제도를 도입해 국내외 상업은행들의 북한 진출 방안을 마련하고, 북한의 산업과 인프라 투자를 견인하기 위한 정책금융기관을 설립한 다음, 은행시스템의 안착 추이를 봐가면서 보험, 카드, 서민금융, 금융투자(증권) 등 제2금융권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예금보험제도와 지급결제제도, 금융감독제도 시행 같은 금융인프라 구축의 단계를 밟는다는 구상이다.
◆거시경제 운영은?
신 위원장은 남북 경제통합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고인플레 등 거시경제 문제 대응을 위한 화폐와 환율, 중앙은행제도와 금융정책 방향 등 금융시스템 정비 방안도 공개했다.
화폐 통합시에는 양국의 경제력 격차와 거시변수(경제성장률 등) 수렴 여부, 통화·환율제도의 동질성 확보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결정하되, 화폐 교환대상을 세분화해 교환비율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환율제도는 북한내의 이중환율제도를 정비해 단일환율제도로 간다는 방침이다. 북한의 현 고정환율제도는 관리변동환율제도로 전환한다는 방향이다.
중앙은행제도는 현재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중앙은행이 맡아 공급하는 현행 북한 체제와 달리, 통화정책 운용 등 중앙은행 고유기능만을 담당하게 하고, 미시적 통제기능은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통화신용정책 운영체계 및 정책수단을 정비한다는 생각이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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