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기자] '판도라의 상자'로 비유되는 개헌 논의가 또다시 정치권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매 정권마다 개헌론이 제기됐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 2년차로 정권 초기인데다, 2016년 총선 및 2017년 대선 등 전국단위 선거가 먼발치에 있어 시간적 여유가 있다. 개헌 찬성론자들이 지금을 '개헌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절차적 요건도 충족됐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개헌 필요성을 인식하는 의원들이 그와 같은 정족수를 채우고 있다. 국회의원 155명이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개헌모임)'을 만들어 활동할 만큼 개헌 담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건 속에도 개헌이 성사될 가능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고 있다. 개헌이 실제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 온갖 사회·경제적 이슈가 맞물려 터져 나올 수 있고,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급한 개헌모임, '골든타임' 놓치면 언제 또…
개헌 추진을 바라는 국회의원들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헌 논의 불씨를 당기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 최전선에서 개헌 논의를 끌어가는 인물은 여야의 대표적 개헌론자로 꼽히는 새누리당 이재오(사진左)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사진右) 원내대표다.
이들은 지난달 말 정기국회가 끝나는대로 국회 특위를 설치해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는데 뜻을 모았고, 이후 이들이 속해있는 개헌모임 소속 33명(與 10명, 野 26명)의 의원들은 특위 설치를 촉구하는 내용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지난 10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처럼 개헌 찬성론자들의 마음이 급한 이유는 내년 초까지 개헌 논의가 물꼬를 트지 못할 경우 20대 총선 체제로 돌입하게 되면서 개헌 동력이 표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올해 내 개헌특위를 가동시켜 내년에는 본격적 개헌 논의를 통해 차기 총선 전에 개헌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국회법 44조에 따르면 국회는 본회의 의결을 통해 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다. 이에 여야 지도부가 특위 설치에 정치적 공감대를 이룰 경우 연내 개헌 특위 설치가 가능한 상황이다.
◆與 '개헌 함구령'에 동력 시들, 연말 이후가 변수
한켠에서 이처럼 개헌 논의 불씨를 살리려고 노력 중임에도 최근 한 달 새 개헌 동력은 눈에 띄게 시들해진 모습이다.
지난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권의 개헌 주장에 대해 "민생법안과 경제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개헌 논의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이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 논란 직후 당 내 '개헌 함구령'이 떨어지면서 사실상 개헌 추진 동력이 상실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헌모임이 개헌특위 구성의결안을 제출 한 뒤 하루만에 새누리당 의원 3명(나성린·홍일표·함진규)이 서명을 철회하는 해프닝을 보인 것도 단적인 예다. 의원들이 당 내 개헌논의에 선뜻 나서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 뿐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권력구조 개편에 치우친 개헌 논의가 국민과 공감을 이뤄 추진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선거구 재획정 문제가 개헌과 맞물려 함께 동력을 얻을지 혹은 개헌 문제가 선거구 재획정 후폭풍에 뒷전으로 밀려날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개헌 논의는 김무성 대표가 미뤄 놓은 연말 정국이 끝난 이후에야 활성화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연말 예산 정국 이후 개헌론자들이 다시 한번 개헌 이슈를 들고 나설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지나친 승자 독식과 권력 독점으로 극한 경쟁의 정치를 낳았다고 판단되는 우리 정치가 개헌을 통해 바뀔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은기자 eun0614@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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