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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디지털 명품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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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IT 인사이트]

한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예술품을 선택한다면 '고려 청자'를 꼽는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려 청자도 만들어진 시기나 기법에 따라 여러 종류의 청자가 있으며 따라서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고려시대 때 청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병이나 주전자 뿐 아니라 베개나 바둑판, 술잔처럼 생활에 밀접하게 사용되는 일상도구로서 많이 만들어졌다.

청자 중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수 억 원에 달하는 고려청자들은 원래부터 예술품으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고려상감청자 운문화병'이라면 이름은 '구름문양이 들어간 꽃병'이지만, 용도 자체가 본디 꽃을 꽂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감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예술품들이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은 원래 고려시대 때부터 고가로 팔리던 것들이며 지금도 비싸게 팔린다. 고려시대 당시 생활자기들은 고려 청자지만 지금도 그리 가격이 높지 않다.

이러한 예술 작품 도자기들이 옛날에 얼마나 비쌌는지 알 수 있는 예가 바로 오스트리아 빈의 쉔부른 궁전이다. 쉔부른 궁은 한때 중부 유럽을 제패하던 오스트리아 합수브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사 여제의 궁전이다. 이 궁에는 1700년대 중국에서 수입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도자기들은 당시 같은 무게의 순금으로 지불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금으로 지불된 도자기 중에는 작은 찻잔부터 사람의 키보다 큰 2미터 가량의 거대한 도자기도 꽤 많이 보인다. 당시 도자기로 만든 머그잔 가격을 계산해 보자. (머그잔의 무게가 대략 300g 정도) 금 1g의 가격이 4만2천원이라 치면, 그 머그잔의 가격은 1천270만원 정도이다. 2미터 도자기의 무게가 30Kg이라면 1700년대에 12억6천만원짜리인 것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도자기를 운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실크로드를 건널만하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은 도자기의 산지라 이 정도까지 비싸지는 않았겠지만 고려에서도 역시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긴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예술작품의 가치는 오래되었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 예술품과 별개로 빈티지(Vintage)는 골동품을 말하는 데, 보통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는 제품을 뜻한다. 골동품의 가격은 희소성이나 역사성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술품과 마찬가지로 출시 당시 비싸게 팔았던 고가제품들이 일반적으로 비싸다.

예술품이나 빈티지가 아니고 근래 만들어진 비싼 제품들을 '명품(名品)'이라고 한다.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브랜드들은 외국에서 '럭셔리(Luxury)'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명품'이 아니라 '사치품'이 된다. 사치품과 명품은 결국 같은 단어지만 어감의 간극이 매우 크다. 사치품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명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 대치한 것이다. 마케팅과 광고 덕분에 일반 명사화하여 널리 쓰고 있지만 결국 '명품'이라는 단어는 원래부터 내려오던 단어가 아니라 근래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일본에서도 '‘명품(名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듯이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똥 같은 고가품보다는 주로 일본 명인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제작되어온 칼이나 그릇 같은 공예품, 지역 특산물 그리고 특히 한국과 다른 점은 미술 회화작품을 명품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브랜드'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에서처럼 최고급 제품 브랜드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서 명품의 일본어 번역결과는 ブランド(브랜드)라고 되어 있다.

현재 한국에서 명품의 정의는 최고급 품질의 최고가 패션제품을 뜻하지만 온갖 마케팅에 붙이는 접두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가격을 좀 높게 설정한다 싶으면 너도나도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名品 한우, 名品 호텔, 名品 햄버거…자칭 명품이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의 명품이라는 단어의 선호와 품질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겠지만 사실 명품은 품질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명품백으로 유명한 루이비똥은 1854년에 설립해 160년의 역사가 있으며 그보다 더 비싼 에르메스는 1837년부터 시작되었다. 품질은 기본이고 그 이전에 브랜드이며 브랜드는 철학과 스토리, 역사를 가져야 한다. 단지 품질이 좋다고 단기간에 명품이 된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인은 자신이 미인임을 알지만 스스로 미인이라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주변에서 미인임을 인정한다. 명품도 이와 같아서 실제 명품브랜드들은 사람들이 명품임을 인정하기에 제품명을 명품이라고 붙이지 않는다. 90년대 한국에서 한 가전업체가 TV이름을 '명품(名品)'이라고 붙여서 판매한적이 있다. 당시는 독점적인 시장 구조 때문에 적당히 많이 팔았겠지만 생각해보면 실소하게 만든다. 가전/음향분야에서 명품이라 할만한 브랜드는 단연 B&O 이다. B&O보다 가격적인 면에서 훨씬 더 비싼 앰프나 스피커도 많지만 B&O의 제품에 담겨있는 철학이나 디자인, 그리고 가전업체로서 오래된(1925년 설립) 전통과 역사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IT나 디지털 쪽에서는 아직 명품이라 할만한 브랜드나 제품이 없다, 회사의 역사와 철학, 브랜드 스토리, 제품의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애플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브랜드이긴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IT 분야는 역사 자체가 짧아 명품이 갖추어야 할 브랜드로서의 역사성을 쌓기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란다. 이러한 시간과 브랜드의 갭을 메꾸는 방법으로 한때 패션 명품 브랜드를 빌려와 휴대폰에 붙이는 이른바 콜라보레이션이 유행한적이 있었다. 프라다폰, 아르마니폰, 베르사체폰 등 온갖 패션 브랜드가 전화기에 붙여져 판매되었다.

LG가 만든 프라다폰의 경우 버전3까지 나오며 꽤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LG는 프라다폰 한 대당 6달러의 로열티를 지급했다. 대당 6달러가 작아보일 수 있겠지만 전세계 100만대 팔렸다고 알려진 프라다폰 3.0의 로열티가 70억원 정도이며 비슷한 숫자로 프라다1과 2가 팔렸다면 로열티만 210억원이 넘는다. (참고로 갤럭시 S4에 들어가는 CPU라 할 수 있는 AP 퀄컴 스냅드래곤 600(APQ8064T) 쿼드코어의 가격이 20달러이다.) 전세계에서 수 천만대씩 팔리고 있는 갤럭시 시리즈에 비해서는 100만대의 판매 댓수가 낮아 보이지만 그 당시 LG 상황으로서는 잘 팔린 폰이었다. 이런 브랜드 폰들은 특히 명품을 선호하는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했는데 실제로도 프라다폰을 가장 많이 구매한 계층은 20대 초반의 여학생들과 여성 회사원들이었다.

왜 프라다폰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팔렸을까? 명품 브랜드의 속성은 결국 자기 과시이다. 여성들이 사는 명품들 중 대다수가 백인 이유는 들고 다니면서 자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대나 40대 여성들도 명품백을 들고 다니면서 자랑하겠지만 그들은 굳이 들고 다니는 백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는 고급아파트나 자동차 등으로 부를 과시 할 수 있기 때문에 백은 여러가지 과시 물품 중 하나일 뿐이다.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명품백이나 명품구두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부모집에 얹혀 살고 있고, 과시할만한 차를 사서 끌고 다니기에는 경제력이 떨어져 명품 백에 투자하는 것이다. 몇 백 정도 백이라면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차나 집과는 달리 월급을 모으면 사는 것이 가능하다. 프라다폰이 많이 팔린 이유 역시 명품백이 많이 팔린 이유와 다르지 않다. 백은 옷차림에 따라 바꿔줘야 하므로 같은 백을 매일 맬 수 없지만, 전화기는 항상 같은 전화기를 들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다. 가격도 몇 백 만원짜리 프라다백보다 싸다.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던 명품폰들이 어느 순간부터 소리 소문 없이 출시되지 않았다. 명품은 희소성에 의한 가치가 중요한데 휴대폰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제품은 그런 가치를 가질 수 없다. 처음에는 전화기에 인쇄된 명품 브랜드에 혹했지만 결국 휴대폰 자체는 일반폰에 브랜드를 인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누구나 들고 다니다 보니 전화기에 아무리 명품브랜드가 찍혀있어도 명품으로 인정을 안 하는 것이다. 명품을 사는 이유가 과시인데 과시가 안 되니 자연적으로 수요가 없어져 버려 이제는 프라다를 마지막으로 명품 브랜드 스마트폰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한국이 디지털분야에서 명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확고한 기업철학과 혁신적인 디자인, 선도적인 기술, 높은 품질 등을 갖춘 상태에서 상당한 시간을 유지한 이후에야 외부로부터 명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 단순히 몇 개 제품이 기능적인 면에서 잘 작동된다거나 기존의 명품 브랜드를 빌려온다고 명품이 되는 게 아니다. 명품이라고 마케팅을 한다고 명품이 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김석기 (neo@mophon.net)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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