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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실리콘 밸리 냅킨 투자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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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IT 인사이트]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현재 아무런 사업 아이템도 없이 5장의 슬라이드를 피칭하고 2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고 해서 화제이다. 이런 기사만 보면 정말 미국은 스타트업이 투자 받는 천국처럼 들린다. 스타트업이 사업 아이템도 없이 200만 달러를 투자를 받을 정도라면 웬만한 사업 아이템이 있는 한국 스타트업이 가면 엄청난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1억원의 여유자금이 있어서 어디에 투자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당신에게 어느 날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작은 스타트업과 투자미팅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학과 소프트웨어 강국이라는 인도의 최고 대학인 델리대학 출신들로 구성되었다는 이들이 모바일 소셜미디어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사업아이템이라고 소개한 PT를 듣고 여러분은 선듯 1억원을 엔젤로서 투자하겠는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겠는가?

물론 아이템의 설명을 들어보고 괜찮으면 투자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낯선 외국인 청년들에게 아이템이 괜찮다는 이유로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인도가 수학과 IT가 발전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인도의 델리대학이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라는 설명도 들었지만 1억원을 생으로 날릴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인도나 델리대학이 투자를 해야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대체 뭘 믿고 투자를 하냐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 방식일 것이다.

장소를 실리콘 밸리로 옮기고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갓 시작한 젊은이들 몇 명이 엔젤투자를 받으러 갔다고 생각해 보자. 실리콘 밸리의 엔젤들에게 한국은 전화기 제조로 알려진 나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북한과 헛갈리는 잘 모르는 나라이고, 서울대학이나 카이스트 출신이라고 해서 스탠포드나 MIT를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엔젤이 보는 인도의 델리대학 출신이나 실리콘 밸리의 엔젤투자자가 한국의 서울대출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인도 델리대학 출신이라면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자리잡고 있는 인도출신의 투자자들에게 투자 받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실리콘 밸리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투자 받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알 수 있다.

VC에 의한 투자는 다르다. 한국 IT기업들도 종종 실리콘 밸리의 VC에서 투자를 받는데 이 경우는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과 달리 확실한 수익구조와 매출, 이익, 단단한 고객기반이 있을 경우 투자한다. VC는 확실한 숫자가 나오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당연히 VC에게 스타트업은 아무리 사업아이템이 좋다고 해도 투자대상이 아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이 거액의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가 가끔씩 나오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이 투자 받는 경우는 철저하게 인맥으로 연결된 신뢰기반이 작동한다. 대표적으로 PAYPAL 출신들이 그렇고 구글 출신들이 그러하다. 같이 근무한 사람들을 통해 능력과 실력이 검증되고 그 위에 사업 아이템인 것이지, 밑도 끝도 없이 모르는 사람들이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왔다고 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사업 아이템 없이 5장의 슬라이드로 투자 받은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또 한가지는 와이컴비네이터와 같은 엑셀러레이터에 의해 투자를 받는 것인데 그것도 결과적으로는 어느 학교출신인지와 어느 회사출신인지 그리고 경영자 중에 유태계 출신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투자가 결정된다.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를 하는 주체들은 대부분 유태계 자본들이다. 그리고 유태계 자본을 투자받는 회사들은 대부분 유태계 코-파운더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실리콘 밸리에서 엔젤투자를 진행 할 때 엔젤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만나 사업계획서 없이 냅킨의 뒷면이나 명함 뒷면에 볼펜으로 적으면서 투자를 유치하는 게 유행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물론 현상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 단편적인 기사의 이면에는 이미 투자자와 스타트업 경영자 사이에 신뢰기반의 인간관계가 조성되어있다는 것이 빠져있다.

그 관계는 이전 IT 직장이나 학교의 잘 아는 선후배거나 투자자가 아버지의 친척이나 친구일 수도 있고 또는 옆집 아저씨일 수도 있다. 이미 서로를 잘 아는 관계이기에 형식 없이 메모지에 설명하고 엔젤투자유치가 가능한 거다. 그 상황을 외국인 스타트업이 가서 똑같이 냅킨에 따라 한다고 투자가 가능할까? 아니면 다섯 장의 슬라이드로 피칭한다고 투자 받을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모든 것을 뛰어 넘을 만큼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출 경우라면 예외일 수 있겠다. 아니면 단시간에 실리콘밸리 내에서 인정을 받거나 그들과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한다면 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냉정히 말해서 실리콘 밸리에는 3개월 정도 단기간 들리는 외국 스타트업에게 갈 투자금이 거의 없다. 사실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스타트업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많은 브로커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스타트업들에게 실리콘 밸리 투자의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투자 여부는 아이템이나 영어를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실리콘 밸리 투자유치 지원은 영어실력을 기준으로 보낸다. 이래 저래 한국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을 안 해도 토익점수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석기 (neo@mophon.net)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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