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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우물' 통신산업의 경쟁 아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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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IoT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요건②

[허준기자] 사물인터넷(IoT) 시대로의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지만 국내 통신시장은 여전히 보조금 경쟁에 안주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경쟁활성화 정책실패로 인해 통신 시장은 지리한 점유율 경쟁에만 매달릴뿐 서비스 경쟁 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5세대(G) 투자 등 통신시장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보조금 경쟁을 벗어나야 한다"며 "더 이상 보조금으로 가입자 유지에 사활을 걸다간 통신강국의 명성도 허상이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물원 안의 '통신 3사'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지난 2000년부터 SK텔레콤과 KT(옛 KTF), LG유플러스(옛 LG텔레콤) 경쟁 구도가 이어졌다. 신세기통신을 합병한 SK텔레콤이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고, KT가 30%, LG유플러스가 20%를 차지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5대3대2'의 구조는 여전히 유효한 경쟁구도의 그림이다. 시장의 점유율은 통신사들의 영업실적의 기본적인 지표로 작용한다. 따라서 점유율의 하락은 경영성적의 하락으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점유율 하락은 용서되지 않는다.

음성통화 위주의 2세대(2G) 시대의 경쟁은 '끊김 없는' 통화가 최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회절성이 없는 800㎒ 대역에서 서비스한 SK텔레콤은 '프리미엄 품질'을 앞세웠다. 같은 지역에서 서비스하더라도 SK텔레콤의 저대역 주파수로는 통화가 터지는 지역에서도 PCS사업자였던 KT와 LG유플러스의 1.8㎓ 대역은 통화가 끊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에 비해 1.8배 이상 기지국을 늘려 통화품질을 유지해야 했다.

그나마 통화품질 문제는 3세대(3G) 시대가 열리면서 잦아들었다. 더 이상 낮은 대역의 주파수가 장점인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파수는 시대에 따라 800㎒ 대역이 황금주파수로 각광을 받기도, 1.8㎓ 대역이 인기를 끌기도 한다"며 "스마트폰, 영상전화의 시대가 오면서 낮은 대역의 통화품질이 우수하다는 인식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기주파수의 획득을 근간으로 하던 통신 3사의 경쟁은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통신산업에 3개 회사만 존재하는 울타리가 쳐지면서 통신사들은 그들 스스로의 생존 방식의 룰을 만들었다. 경쟁대신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 '이대로' 시장을 지키자는 인식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도 3사의 요금제와 서비스는 판에 박은 듯 유사한 것들 뿐이었다.

◆'보조금'이 선택기준, 요금-서비스 혁신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이동통신사 선택 기준이 '보조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요금이나 서비스, 고객을 위한 혜택 등은 비교할 필요도 없고 오로지 단말기에 얼마나 많은 보조금을 주느냐가 유일한 선택의 기준이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2년 이상 같은 통신사를 쓰는 사람은 '호갱' 취급을 당한다. 통신사들이 기존 고객 챙기기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다른 통신사에서 이동해오는 고객에게는 수십만원이 보조금을 퍼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 넘어가면 바보'가 된다.

그 결과 새벽부터 통신사 대리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웃지못할 진풍경도 등장했다. 지난 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통신사 관계자들도 이같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통신사의 고위 관계자는 "보조금은 극소수의 일부가 대다수가 받아야 할 것을 챙기면서 생기는 이용자 차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당장의 고객이 아쉬운 영업현장에서 전투를 하다보니 과열이 벌어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조금을 많이 태우면 점유율이 올라가는 마약같은 현상을 경험하면서, 굳이 머리를 써가며 좋은 요금이나 상품을 개발하려는 의지도 줄어든다"고 실토했다.

과도한 보조금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현실은 여전히 과열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조금 과잉 지급으로 1천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받고도 보조금 지급을 멈추지 않은 통신사는 올해 3월부터 순차적 45일 영업정지 제재를 받고 있다.

◆정책당국도 우리가 남이가(?)

경쟁이 활성화 하지 않는, 보조금 일방의 경쟁이 과열되는 것은 정부의 시장개입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옛 정보통신부가 방송통신위원회로, 다시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로 나뉘어질때까지 보조금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거듭돼 왔지만, 3곳뿐인 통신사에 대한 감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기관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2월 방송통신위 양문석 상임위원은 "이통3사가 방통위의 보조금 지급을 중지하라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방통위에 대한 반항이며, 이제는 방통위와 사업자간의 전쟁"이라며 "강력한 제재로 방통위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과거부터 정책당국은 통신사들에 수익을 보전해주고 망투자를 유도하는 '당근과 채찍'의 정책을 펴 왔다.

업계 관계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통신산업을 키우려다보니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그룹사 위주로 시장참여를 유도해 파이를 키우고, 투자를 늘리는 대신 수익을 보전해주는 구조가 됐다"고 분석하고 "현재의 통신3사 구도 역시 당초에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을지 몰라도 더 이상 정부주도의 시장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애플 아이폰 출시이후 통신산업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플랫폼) 중심의 생태계 싸움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정보통신부가 지배적사업자인 SK텔레콤에 대해 요금인가를 함으로써 요금 및 경쟁구도를 조절했다"며 "KT나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이 요금제를 내놓으면 그대로 유사한 서비스를 발표하면 그만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통신3사의 서비스나 요금상품이 현재도 유사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도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자신들의 점유율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통신3사는 요금담합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실정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011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통신3사 요금제 담합 문제를 신고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담합에 대한 증거나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참여연대 측은 지난 2013년, 또다시 담합의혹을 제기하며 신고서를 제출했다.

세계 각국은 통신시장에 경쟁이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강구한다. 그러나 우리 정책당국은 그동안 경쟁활성화에는 소극적이었다.

최근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알뜰폰(MVNO)만 하더라도 통신 선진국들은 가입자가 포화하기 전 도입을 서둘렀다. 기존 통신사들과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와 품질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한 것이다.

최근 우체국이 유통에 가세하면서 우리나라도 알뜰폰 가입자가 시장점유율 5%를 넘기고 있다. 같은 조건의 신규 이동통신 사업자도 아닌 알뜰폰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폭증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의 통신정책이 경쟁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방증이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10%, 프랑스는 12%, 영국은 13%의 점유율을 알뜰폰 사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허준기자 jjoon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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