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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 IT 하청계약의 불신(不信)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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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를 꼽으라면 전문가들은 십중팔구 “제 값 받기”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특히 공공 프로젝트에 대해 이런 목소리가 높습니다.

한국전산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발주한 IT 프로젝트의 경우 기준가의 평균 48%에서 계약이 체결됐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공공 SI 사업은 밑지는 장사”라는 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될 법도 하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간에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공공 SI 사업은 대개 대형 SI 업체가 수주합니다. 그런 다음 협력업체에 하청을 주지요. 문제는 역시 ‘제 값 받기’ 입니다. 대형 SI 업체가 정부를 상대로 틈만 나면 “헐 값 입찰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과 똑같이 대기업의 협력 업체들은 대기업에 대해 “제 값을 안준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죠. 그만큼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선 비용 산정 구조에 큰 허점이 있어 보입니다.

결국 ‘제 값’이란 SW 용역에 대한 대가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산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가 산정의 요소를 보는 게 중요하죠.

대가 산정 요소에는 인건비, 제경비, 기술료 등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인건비는 SW 개발에 드는 직접 비용입니다. 제경비는 그 인력을 제공하는 회사의 유지비입니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특정 인력만 관여하지만 이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회사에선 다른 비용이 필요한데 그 비용에 해당하는 거죠.

기술료는 기술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거죠. 급변하는 기술을 해당 프로젝트에 적용할 때 예상치 않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죠. 그 비용은 적용하는 기술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술료는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인건비는 해당 프로젝트에 관한 직접비이고 제경비와 기술료는 간접비인 셈입니다. 그런데 대개 SW 개발 용역 사업에서 직접비보다 간접비가 크다고 합니다. 인건비가 100이라면 제경비는 110이고 기술료는 20~40입니다. 따라서 프로젝트에 필요한 직접비용이 100인 반면 간접 비용은 130에서 150인 것이지요. 좀 웃깁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거죠.

이래가지고는 '합리적인 경영'을 논할 게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통부는 새로운 SW 사업 대가 기준을 만들 때 직접 인건비의 비중을 더 높이고 간접비를 내리는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경비와 기술료의 산출 근거가 애매하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각각 인건비의 110%와 20~40%의 비율을 적용했는데 정확한 계산법이라고 보기에는 영 납득이 안갑니다. 회사 측에서 비용을 두리뭉실하게 처리할 수도 있겠다는 추측까지 낳게 하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정통부 관계자는 “대기업은 정부로부터 제경비와 기술료를 받고 협력업체에는 안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대형 SI 업체와 하청 협력업체 사이에 불공정 계약이 체결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죠.

이에 대해 SI 업계 관계자들은 “정통부가 잘 못 알고 있다”며 “다 지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협력 업체들도 “정부로부터 받은 110%의 제경비를 100%, 40%의 기술료를 20%만 주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제경비와 기술료를 통째로 안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째로 안준다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산출 근거가 애매한 만큼 처리 방식도 애매할 소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료 비공개로 인한 불신입니다.

SW 사업 대가는 직접 인건비가 기준입니다. 직접 인건비는 업무량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기서 업무량과 인건비는 대형 SI 업체가 사업을 수주하고 계약을 체결할 때 발주기관과 구체적인 수치로 객관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형 SI 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에도 이 수치가 계약의 근거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00명이 100일간 해야 될 사업이 하청이 내려오면 70명이 70일간 해야 될 일로 둔갑하는 게 태반입니다. 나머지 30명이 30일간 할 일은 대형 SI 업체의 마진이 되는 셈이지요.

이는 어딘가 상당히 불공평해 보입니다. SI 업체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정보시스템의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고급 노동력을 통해 고급 대가를 받을 때 일 것입니다. 그렇잖고 협력업체에 돌아갈 몫을 주지 않고 챙긴다면 손해를 보는 업체가 있고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죠.

이런 일이 관행이 된 것은 협력 업체가 원청 계약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형 SI 업체가 협력 업체에 계약 조건을 속이는 셈입니다.

요즘은 협력업체가 원청 계약 단계부터 대형 SI 업체와 같이 제안작업을 하기 때문에 계약 기준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감일 뿐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렇다고 대놓고 따질 형편도 아닙니다. 일할 업체는 많겠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를 개선할 제도적 장치가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 겁니다.

정치인도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나서는 때입니다. 하나의 사업을 같이 하면서 뻔히 정해진 돈을 숨기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수만 개에 달하는 IT 중소기업은 정부가 기준가의 48%로 발주한 것을 다시 그것의 70% 수준에서 대형 SI 업체로부터 따내는 게 현실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IT 중소기업은 적어도 1만원 받고 해야 할 일을 불과 3천500원에 해주고 있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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