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삼성이 항소법원에서 역풍을 맞았다. 갤럭시S 등 삼성 초기 모델에 대한 애플의 판매금지 신청을 기각한 1심 재판부 판결이 항소심에서 기각된 때문이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18일(현지 시간) 루시 고 판사가 애플의 삼성 제품 판매금지 신청을 기각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결했다고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과 특허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가 보도했다.
이날 판결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애플의 핵심 무기인 디자인 특허와 트레이드 드레스를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대신 ▲핀치 투 줌(915 특허)을 비롯해 ▲러버 밴딩(381특허) ▲탭 투 줌 (163특허) 등 상용 특허 3건 침해 부분에 대해서만 판매금지 가능성을 열어놨다.
항소법원은 “애플이 삼성의 디자인 특허로 인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1심 법원 결정을 뒤집을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상용 특허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1심 재판부가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파기 환송한다고 밝혔다.
◆판금 대상 제품은 전부 구형…직접 피해는 없어
이번 결정은 지난 해 8월 배심원 평결이 난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 중 첫 항소심 판결이다. 당시 배심원들은 삼성에 10억5천만 달러 배상금을 부과했다.
이후 애플은 특허 침해 평결이 난 삼성 26개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신청을 했다. 하지만 루시 고 판사는 지난 해 12월 특허 침해와 애플 피해 간의 인관관계가 약하다면서 판금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애플은 곧바로 루시 고 판사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애플의 항소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어차피 판매금지 대상 제품들이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는 구형 모델들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핵심 무기인 디자인 특허와 트레이드 드레스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 역시 삼성 입장에선 성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은 간단하게 넘길 사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디자인 특허 지뢰밭은 피했지만 상용특허란 또 다른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 전문 사이트인 포스페이턴츠 역시 전략적인 측면에선 상용특허를 기반으로 한 판매금지 판결이 훨씬 더 위력적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디자인 특허보다는 상용특허가 우회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삼성은 갤럭시S3부터는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대부분 우회했다. 더 이상 디자인 특허권은 삼성을 옥죄는 무기가 되기 힘들단 얘기다.
◆애플, 2차 특허소송선 디자인 대신 상용특허 주력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에 관심이 쏠리는 건 삼성과 애플 간의 2차 특허 소송 때문이다. 내년 3월 시작되는 이 소송에선 갤럭시S3와 갤럭시 노트 10.1 등과 아이폰5, 아이패드 미니, 아이패드4 등 애플 최신 제품들이 대상이다.
두 회사 간 2차 소송은 성격면에서 1차 소송과는 많이 다르다. 1차 소송의 핵심 이슈가 디자인 특허였던 것과 달리 2차 특허전쟁은 안드로이드의 기본 원리가 핵심 쟁점이다. 2차 특허 소송이 표면적으로 삼성-애플 싸움이지만 한거풀 들어가보면 구글-애플간 전쟁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과의 2차 소송에서 애플은 디자인 특허와 트레이드 드레스는 문제 삼지 않았다. 디자인 특허는 삼성이 다 우회했기 때문이다. 대신 애플은 상용 특허를 공격 무기로 내세웠다. 따라서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은 애플과의 2차 특허 소송을 앞둔 삼성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포스페이턴츠는 “이번 판결이 삼성이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구형 모델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은 오해”라면서 “이번 판결로 애플은 삼성의 다른 제품들에 대해서도 판매금지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이번 판결이 내년 3월 시작될 삼성과 애플 간의 2차 특허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루시 고 판사가 (항소심 결정대로) 삼성 구형 모델에 대해 판매금지 판결을 할 경우 애플은 신형 제품도 똑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플, 항소법원 판결로 추가 판금 요구할 수도
우선 문제가 된 부분은 컴퓨터 생성 데이터 구조에서 행동을 실행하는 시스템과 방법(특허번호 647)이다. 특허 전문가인 플로리언 뮐러는 이를 '데이터 태핑' 특허라고 불렀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특허권은 텍스트에 링크를 자동으로 연결해주는 기능이다. 현재 거의 모든 안드로이드 기기는 이 특허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 문제 삼은 것은 '컴퓨터 시스템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보편적인 인터페이스(특허번호 604)다. 이 특허권은 애플의 음성인식 시스템인 시리와 관계가 있다. 애플이 이 특허권을 확고하게 인정받게 될 경우 구글의 검색 사업에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뮐러는 지적했다.
세 번째 문제가 된 특허권이 바로 '밀어서 잠금 해제(특허번호 721)'다. 애플이 안드로이드 진영을 공격할 때 단골로 동원되는 특허권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삼은 특허권이 단어 자동완성 기능(특허번호 172). 이 특허권의 공식 명칭은 단어 추천 기능을 제공하는 방법, 시스템, 그리고 그래픽 이용자 인터페이스다. 이 특허권은 시리 관련 특허와 마찬가지로 모바일 검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글의 모바일 검색 앱에도 이 특허에서 규정하는 기능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1차 특허 소송 쟁점 사항 중 상용특허 부분에 대해 항소법원이 애플 손을 들어준 것.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된 특허들은 애플이 2차 소송에선 직접 공격 무기로 내걸진 않은 것들이다. 또 갤럭시 최신 폰들은 핀치 투 줌을 비롯한 애플 특허권을 우회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소법원의 결정에 따라 구형폰들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질 경우 애플이 공격 대상을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첫 무대는 안드로이드 OS의 주요 기능이 쟁점이 된 2차 소송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항소법원의 이번 판결이 삼성에게 부담스러운 건 바로 그 부분이다.
◆애플 특허권 대부분 무효 공방…향후 쟁점될듯
물론 변수는 있다. 핀치 투 줌을 비롯한 상당수 특허권들이 연이어 무효 판결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특허청의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판결에 반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년 3월부터 시작되는 재판은 최소한 1년 여 가량 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문제가 된 특허권들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해당 특허권도 관련된 부분은 원인 무효로 바로 종결될 수도 있다. 따라서 그 부분까지 고려할 경우 이번 판결이 어느 쪽으로 튈 지를 전망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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