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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의 씨앗' ARM, 17년 전에 알아본 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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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ARM코리아 사장 "국내 산업에 도움 되고 싶어"

[박계현기자] 영국의 반도체 설계 업체인 ARM은 세계 모바일 산업의 씨앗같은 존재다. 이 회사가 설계한 대로 만들어진 반도체 칩 수는 작년 기준으로 87억개에 달한다. 스마트폰 등 각종 기기들이 이 회사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김영섭 ARM코리아 사장은 이런 회사를 이미 17년 전에 알아봤다. 1997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직원 100명 남짓의 작은 벤처기업에 불과했다. 이런 회사를 발굴해 같은 배를 탔으니 김 사장의 선견지명을 알아줄만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17년을 같이 커왔다.

최근 경기도 분당에 있는 ARM코리아 사옥에서 기자와 만난 김 사장은 "한국 업체들이 시장 리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과거 삼성·LG 등이 퀄컴 같은 해외 팹리스들을 쫓아가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리더로서 시장에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며 "ARM도 새로운 기술 접목에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RM은 직접 반도체칩을 생산하지 않고 반도체 설계에 관한 지적재산권(IP)을 954개 회사(2012년말 기준)에 공급하고 있다. 파트너사들이 ARM의 기술을 사용해 만든 반도체 칩수는 지난 2012년 기준 87억개로 지난 5년간 연평균성장률 25%를 기록하고 있다.

ARM의 설계 기술을 사용한 모바일 AP가 탑재된 아이폰이 출시된 것이 2009년. 불과 3~4년만에 스마트폰이 전세계 IT 산업의 중심에 서면서 ARM 역시 이들 생태계의 중심에 선 회사가 됐다.

한국IBM에서 근무했던 김영섭 사장이 ARM의 가능성을 확신한 이유는 IBM 같은 큰 회사가 ARM을 자신들과 비교하고 있었다는 것, 또 ARM의 축소명령형컴퓨터(RISC) 아키텍처 방식으로 설계된 애플 단말기였다. 그를 움직였던 또다른 동력은 간절함이었다. 당시 김영섭 사장은 자신이 창업한 건한에서 나와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고 있었다.

김영섭 사장은 "사업을 시작하는 데는 명확한 예측력·추진력·판단력보다 굉장히 궁한 상황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며 "어려운 상황에 처하다 보니 ARM 본사 경영진에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지분 20% 참여를 제안할 정도로 간절했고 ARM의 사업모델에도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간절함은 ARM코리아가 외국계 회사의 지사들이 가지 않는 독특한 길을 갈 수 있게 했다. 그가 설립과정을 주도했던 ARM차이나는 불과 10년만에 직원이 한국의 10배인 150명으로 늘어나는 등 급성장했다.

김 사장은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PCB(인쇄회로기판) 조립라인에 여공들이 끊임없이 줄지어 서 있는게 보였다"며 "당시 디자인 역량으로선 불모지였지만 중국 담당자들이 영어로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을 엿봤다"고 전했다.

김영섭 사장은 "17년간 ARM을 지켜봤고 아주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렀다"며 "중국·대만에서의 ARM 사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이 가장 정신차려야 할 때, 다시 한번 뒤돌아보면서 추스려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메모리반도체는 삼성·SK하이닉스가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반도체 전체 규모의 80%를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에선 중국이 빠른 속도로 뒤쫓아오고 있다.

김 사장은 "중국은 (시스템반도체 산업에선) 비교 대상이 안되던 나라였는데 지금은 비교를 한다"며 "중국 정부의 지원도 크고 시장이 크기 때문에 당장 올해 말부터 쫓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중국의 반도체 인력은 한국에 비하면 말도 못할 정도로 인력이 풍부하다"며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지 않아 ARM차이나에서 채용 공고를 내면 인텔·화웨이·하이실리콘 등 다양한 기업에서 지원을 한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기술은 한 회사가 독점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한 회사에서 많이 배운 사람이 퍼트리는 것"이라는 특유의 철학을 바탕으로 중국의 유연한 노동시장을 높이 평가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김영섭 사장은 스스로 지난 17년간 구축한 ARM코리아의 노하우를 대기업 뿐 아니라 국내 중소 팹리스, 정부, 대학교 등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계와 아낌없이 공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영섭 사장은 "국내 팹리스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업체 측에서 요청하지 않아도 세계 시장의 흐름을 알고 이 흐름에 맞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1세대 팹리스 중 어떤 회사는 피처폰 시장에서 성공한 경험 때문에 틈새시장을 노리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개발에 매진하고 있지만 이미 퀄컴 등이 자리잡은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보다는 자체 보유한 아날로그 기술을 접목해 다른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예를 들었다.

ARM 생태계에는 반도체 칩셋 업체들뿐 아니라 OEM(완제품업체), 각 국의 통신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도 모두 참여한다. 2013년 현재 IT산업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 ARM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섭 사장은 "지난 17년간 업계를 지켜본 결과,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기술력은 전체 사업 성공 요인의 20%도 안된다고 본다"며 "기술력을 접목시킨 제품을 유지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가능한지 마케팅 인력이나 바이어 인맥이 있는지 등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중소 팹리스 기업들의 경우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 취약한 점이 많아 글로벌 기업들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ARM이 가진 풍부한 데이터 베이스는 완제품 전에 칩이 출시되고, 칩이 출시되기 전에 반도체 설계가 먼저 수립돼야 하는 사업 모델 고유의 특성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현재 ARM이 개발 중인 최신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최종 소비자들을 만나는 시기는 적어도 5년이 걸린다.

김영섭 사장은 "고객사에서 ARM의 라이선스로 제품을 개발해서 실패하면 그것은 고객사의 실패일 뿐 아니라 우리의 실패이기도 하다. 로열티도 얻을 수 없고 보람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고객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기 전에 이 라이선스가 고객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논의하는 자리를 꼭 마련한다. 고객사가 엉뚱한 제품을 개발해서 실패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얻은 세계 IT산업의 흐름을 정부·학계와도 공유할 의사를 밝혔다. ARM은 정부의 시스템반도체 정책 수립에도 컨설팅 등의 형식으로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사장은 "ARM에는 정보가 많다"며 "세계가 돌아가는 트렌드를 같이 공유하면서 정부가 정말 필요로 하는 정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학교에서 인텔 아키텍처만 가르쳤다면 지금은 적어도 국내 250개 대학에서 ARM 아키텍처를 교육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ARM을 좀 더 많이 배워서 졸업 후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교재 제작·파트너와의 협업 등 할 일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영섭 사장은 "제가 해야할 일만 하면 업무량이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를 위해서 좀 더 일하고 싶고 그런 일을 벌이다 보면 일이 많아진다"며 일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김영섭 ARM코리아 사장은?

▲1955년생▲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81)▲대림산업 입사('81)▲한국IBM입사('85)▲건한 창립 멤버('95)▲ARM코리아 설립('97)▲ARM타이완 설립('00)▲ARM차이나 설립('02)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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