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노대래(사진)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정부가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 집단 문제와 관련,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와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등 정당한 보상체계를 위협하는 (대기업집단의) 잘못된 관행을 근절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은 그간 국민경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권한과 책임이 괴리된 바람직하지 못한 구조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행태 측면에서 대기업집단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추구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소기업영역 침투, 그리고 전후방 연관시장에 있어서의 독과점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앞으로 총수일가의 지배력 감소 없이 대규모 기업을 인수하는 행위와 편법적인 경영권 세습행위를 막기 위해서 신규 순환출자는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와 관련, 노 위원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너무 과도한 규정을 담아 지나친 기업 '옥죄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는 우선 개정안 내용과 관련, "계열사간 거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것으로 와전돼 있는데, 계열사간의 거래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정상거래보다 유리한 조건의 거래, 일감 몰아주기, 사업기회 유용 등 총수일가에게 비정상적인 이익을 부여하는 거래 중에서 대표적인 3가지의 부당한 거래만을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위원장은 또 "총수일가의 관여를 추정하는 내용이나 공정거래법 위반의 입증책임 문제는 관련 규정을 명확히 해 과잉규제 논란의 소지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 총수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자칫 기업의 동력을 상실시켜 보수적인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제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재계와 정치권의 주장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정안 내용에 따르면 총수 일가 지분이 30%를 넘는 계열사는 내부거래가 적발되면 명확한 증거 없이도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 처벌토록 했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등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입증 책임을 현행 공정위에서 해당기업 측으로 넘기는 방안도 담았다.
노 위원장은 이어 "국회와 긴밀히 협력해 합리적인 개정안이 마련되도록 할 것"이라며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를 보다 단순·투명하게 유도하고,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경영행태를 견제하기 위한 상법, 국민연금법 등의 개정을 관계부처와 협조해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부당단가인하 등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중소 벤처기업 등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거래질서 확립에 대한 의지도 밝혔다.
노 위원장은 "새롭게 개발한 기술, 특허, 영업비밀을 탈취당하지 않고 정당한 보상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도록 공정경쟁질서가 확립돼야 한다"며 "중소 벤처기업들이 자유롭게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개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공정거래 기반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화하면서 다수의 중소 수급사업자와 납품업자들은 대기업에 대한 거래의존도가 매우 높아졌고, 종속성(lock-in-effect) 또한 심화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득권이나 힘의 우위를 토대로 한 부당단가인하나 기술·인력 탈취 등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아직도 근절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노 위원장은 특히 "인권 차원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편의점 본사의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 개정 등을 통해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르텔 적발 비용 및 제재 강화를 위한 카르텔 규제시스템과 관련해서도 재설계의 필요성까지 역설했다.
노 위원장은 "카르텔은 시장경쟁을 원천적으로 제한해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기술개발의 유인을 없애는 가장 큰 불공정행위의 하나"라며 "카르텔 근절을 위해서는 한 번 적발되면 발붙이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실히 뿌리내리도록규제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 위반 적발 확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적발시 부담하게 되는 예상비용이 법 위반을 통해 얻는 기대이익보다 크도록 설계해야 법 위반이 억제될 수 있다는 게 노 위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이를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손해배상소송을 활성화시켜 카르텔 적발에 따른 비용 부담을 높이는 한편, 중기청·조달청 등에 고발요청권을 부여해 형사 제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행정제재의 실효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과징금의 실질부과율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의 소비자 권익 증진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노 위원장은 "소비자에게 필요한 비교정보의 제공을 확대하고, 합리적인 소비관행이 정착되도록 소비자단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소비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문화가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위 인력 보강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은 유능한 법률가와 연구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비해, 공정위는 이 분야가 취약하다"며 "앞으로 연구인력과 조직을 정비해 시장감시 역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노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경제민주화와 중소사업자 및 소비자 보호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 공정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크고 막중하다"며 "공정위 직원들이 경제전반을 조망하는 매크로 시각과 경제 사회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마이크로 시각을 동시에 갖춰달라"고 당부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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