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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인하, 위기의 제약업계]③약가인하 폭탄 'R&D'가 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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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형 제약기업'으로 글로벌사 육성?…270개 국내제약사 중 10%만 해당

[정기수기자] 올해는 110년 국내 제약업계에 분기점으로 기록될 '일괄 약가인하' 조치가 시행된다.

약가인하는 그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성장해 온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건강보험 재정 확충과 국민의 약값 부담을 완화시킨다는 정부의 취지 아래 오는 4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미처 준비할 기간도 주지 않고 강행하는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몇 년 뒤 어느 쪽으로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약가인하 시행 한 달여를 남겨두고 아이뉴스24가 약가인하 정책이 가져올 올해 국내 제약산업의 추이를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복지부-제약사 '소송' 진행…향방은?

②제약업계 지각변동 가져오나

③약가인하 폭탄 'R&D'가 활로?


◆정부 당근책 혜택은 상위제약사만?

보건복지부는 오는 4월 대대적인 약가인하를 단행키로 하면서 제약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당근'도 함께 제시했다.

바로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제약회사를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12개의 글로벌업체를 육성키로 한 것.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되면 우선 의약품 건강보험 등재시 가격 우대를 받게 된다. 특히 혁신형 제약기업이 생산한 제네릭(복제약)의 경우 최초 1년간 현행과 동일한 약가 수준(68%)이 보장된다.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될 약가 일괄인하로 특허가 만료되는 모든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의 약가가 53.55%로 반토막나는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한 우대 조건이다. 혁신성이 인정되는 신약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약가를 더 인정해 준다.

세제 지원도 이뤄진다. 기업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세액공제 범위를 확대 또는 조정한다. 제약기업간 인수합병(M&A)을 촉진하기 위해 합병시 혜택을 주는 방안도 조세당국과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이들 기업에 대한 신약 연구개발 지원액을 지난해 964억원에서 올해 1천469억원으로 늘리기로 하고, 중앙부처와 지자체 연구개발사업에 혁신형 기업을 우선 참여시키기로 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 역시 그럴듯 하다. 국내 제약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R&D 투자 확대를 통한 신약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복지부는 이달까지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4월 중 인증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제약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유는 혁신형 제약기업의 선정 기준인 연구개발비 투자 비중 때문.

정작 이 같은 요건에 부합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국내 제약사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사들이 처한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실효성 없는 '뜬 구름' 잡기 식의 탁상정책이라는 비판이 업계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사진=국내 제약사 중 매출액 대비 R&D 투자에 5% 이상을 쓰는 기업은 동아제약, 녹십자, 한미약품, 대웅제약, 보령제약, 유한양행, 종근당 등 20여개 업체에 불과하다. 사진은 녹십자 R&D센터 전경>

복지부가 제시한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기준은 ▲연간 매출액 1천억원 이상이면서 총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5% 이상 지출하는 제약사 ▲연간 매출액 1천억원 미만이면서 총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7% 이상 또는 연구개발비 50억원 이상 지출하는 제약사 ▲미국 또는 유럽연합 기준(cGMP) 생산시설 보유 기업이면서 연구개발비 3% 이상 제약사 등이 대상이다.

최근 복지부가 이 같은 기준으로 국내 270개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 개발비 현황을 최근 3년간 조사한 결과, 조건에 충족하는 업체는 54개사로 확인됐다. 이는 당초 복지부가 예상한 30개사보다 많은 수치지만, 약 80%에 해당하는 나머지 제약사들은 정부의 지원 혜택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기업은 정부가 밝힌 수치보다 훨씬 적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매출액 중에서 R&D 투자에 5% 이상을 쓰는 기업은 20~25곳에 불과하며 동아제약, 녹십자, 한미약품, 대웅제약, 보령제약, 유한양행, 종근당 등 상위 제약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20여개 업체 명단에는 대기업 계열사와 바이오회사 등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즉, 270여개 국내 제약사 가운데서는 10%에도 못 미치는 기업만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한편, 정부가 내세운 세제 혜택 등 각종 지원도 공수표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의 경우 기획재정부 소관이고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돼 현실화 되기는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또 제약기업간 M&A를 촉진하기 위해 주어지는 특례 요건 완화 역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산업 특성상 생산 품목이 유사해 시장에서 비슷한 품목을 갖고 경쟁하는 관계로 인수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다"며 "게다가 제약기업이 오너 경영체제로 운영되는 만큼 M&A 활성화는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혁신형 제약사' 해당 상위제약사도 반발…약가인하로 R&D 투자 힘들어

<사진=동아제약, 대웅제약, 한미약품, JW중외제약 등 대부분 국내 상위제약사들은 약가인하 시행 후 연구개발 투자 비용을 10~20% 내외까지 감축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JW생명과학 당진수액공장>

실제로 지난해 매출 1천억원 이상 제약사 중에서는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이 7%를 넘는 곳은 LG생명과학(19.3%), 한미약품(16.3%), 한올바이오파마(13.7%), 한국유나이티드제약(12.3%), 안국약품(9.6%), 종근당(9.4%), 동아제약(7.7%), 녹십자(7.2%) 등 8곳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대웅제약, JW중외제약, 보령제약, 일동제약, 일양약품, 환인제약, 동화약품, 동국제약 등도 2010년 기준으로 볼 때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이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기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 상위제약사도 정부 방침을 무조건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당장 약가인하로 각 제약사별로 최대 20% 가량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등 연간 1조7천억원에 달하는 업계 손실이 불가피한 가운데, 연구개발비로 1천5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건 '병주고 약주기'라는 얘기다.

게다가 매출 1천억원 이상 상위제약사들 역시 이번 약가인하로 올해 매출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예전과 같은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제약업계와 회계법인 태영에 따르면 동아제약, 대웅제약, 일동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JW중외제약 등 대부분 국내 상위제약사들은 약가인하 시행 후 연구개발 투자 비용을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 내외까지 감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 가운데 매출액의 13% 이상을 R&D분야에 투자하며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한미약품의 감축액이 가장 크다. 한미약품의 판관비 가운데 R&D비용은 총 478억원이며, 약가인하 후에는 362억원으로 100억원 이상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사진=매출액의 13% 이상을 R&D분야에 투자하는 한미약품은 약가인하 시행후 감축액이 가장 클 전망이다. 사진은 최근 미국 스펙트럼사와 맺은 바이오신약 'LAPS-GCSF' 공동개발 체결식.>

또 상위제약사들의 경우 신약과 퍼스트 제네릭을 다수 보유해 약가우대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약가 일괄인하로 매출 감소의 폭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약가우대 정책과 세제 지원 등 우대 방안은 해결방법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제약사 연구개발 관계자는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의 인증 기준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며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년 이상의 기간과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되고, 신약 후보물질 해외 임상 1상만 진행해도 연간 50억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괄 약가인하로 각 제약사마다 수백억원에서 최대 1천억원대에 달하는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느 회사가 R&D 투자에 엄두를 내겠느냐"고 토로했다.

B 제약사 관계자 역시 "약가인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판매관리비를 줄이겠지만 R&D투자 비용도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이는 결국 제약사들의 미래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제약사, 사실상 시장 퇴출…제도 개선 절실

특히, 지난해 매출 1천억원 미만의 중소제약사들의 경우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중소제약사들은 약가인하 정책 등으로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지원까지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사실 정부의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이면에는 중소제약사들의 구조조정 의도도 숨어 있다. 복지부는 '될성 부른' 제약사만을 선별해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현재 선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정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한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복제약 의약품 위주의 경쟁에서 벗어나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시장 재편이 필요하다는 정부 정책은 이해하지만, 여건상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없는 중소제약사에게는 사실상 시장 퇴출을 의미하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며 "작은 회사는 없어지라는 게 정부의 메시지"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혁신형 제약기업 기준을 크게 완화하든 아니면 아예 이런 제도를 없애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제약산업 선진화를 내세우며 추진한 정부의 제약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핵심인 '혁신형 제약기업' 방안이 오히려 제약사들의 연구개발비용 투자를 어렵게 해 선진화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낼 우려가 있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제약사들이 현재 연구개발 중인 사업 중에서도 단기간 성과 도출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투자하고, 이외 신규 연구개발 사업안에 대한 지출을 중단하는 내용으로 연구개발 예산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연구개발비 축소는 곧 제약사들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생존도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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