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려야 하는 심정을 아십니까?”
지난 98년 당시 한국통신의 한 고위 임원이 기자에게 하소연 투로 한 말이다. '동그라미면 동그라미지 네모난 동그라미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그 임원이 털어놓은 사정을 듣고서야 이해가 됐다.
당시는 IMF 환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나라가 몸부림을 치던 때다. 정부는 소위 ‘고비용 저효율’ 구조 개선을 위해 공무원의 수를 솔선해 줄이는 모범을 보이고 싶었다. 그 압력은 공기업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 내려갔다. 연일 가시적인 인원감축 결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인원대비 영업효율이 낮으면 문책을 각오하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계속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한편으로는 무리할 정도로 인원을 줄이라고 요구 하면서도 투자는 오히려 늘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모든 민간기업이 투자를 축소하는 등 긴축에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더욱 대조적인 모습이다.
경기활성화를 위해서는 공기업이 앞장서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결국 하반기 투자 계획을 조기 집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불요불급한 투자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 임원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그 해 한국통신은 적자를 기록했다. 경영진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이 같은 흐름을 그 임원은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역설적인 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처럼 KT가 겪는 ‘부자유’는 누구보다 KT임원들이 절실히 느껴왔다. 갈수록 치열해져만 가는 통신시장에서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 각종 감사와 예산 운영의 경직성 등 ‘족쇠’를 찬 채 경쟁에 임해야 하는 것은 경영자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KT임원들 중에 민영화를 내심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그 동안의 ‘설움’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 KT가 하고 있는 '돈 안되는 사업들'
KT의 사업내용 중에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게 많다. 공기업(엄밀히 말하면 정부 출자기관)으로서 손익구조에 관계 없이 수행하는 사업이 한 둘이 아니다.
보편적 역무, 공익성 의무 등등으로 불리는 것이 그것들이다.
KT는 지난해 시내전화, 시내공중전화, 도서통신, 선박무선, 복지통신 등 소위 보편적 서비스에서 7천55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그 중 타 사업자들과 함께 출연해 만든 보편적 서비스 기금으로 부터 보전을 받은 금액은 793억원에 불과하다. 손실보전율이 10.5%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표참조)-단위:억원
| 역무별 | 시내전화 | 시내공중 | 도서통신 | 선박무선 | 복지통신 | 계 |
| 손실규모 | 5,071 | 2,015 | 217 | 256 | (451) | 7,559 |
| 손실보전금 | - | 403 | 195 | 195 | - | 793 |
| (타사분담금) | - | (256) | (123) | (124) | - | (503) |
보편적 서비스란 말 그대로 국민이 어디서나 타지역의 요금에 비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산간 벽지나 도서지역에서도 동일한 요금으로 전화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보편적 서비스라는 강제 사항으로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보편적 서비스 기금'을 통해 보전해 주고 있다. 그러나 보전율은 위 표에서 처럼 10% 남짓이다.
KT는 이밖에도 수해 등 재난지역 통신지원에도 그의 의무적으로 나선다. 또 지난해 KISDI, ETRI 등에 공동연구 지원으로 2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투자 효과가 장기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이 꺼리는 부문에 대한 투자도 앞장서고 있다.
이같은 활동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배경이 자발적이냐 강제성을 띤 것이냐의 차이는 크다.
또 KT가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고 있다. 정부의 중소기업구매촉진법에 따라 경쟁입찰보다는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KT는 현재 공기업이 아니지만 '특별법인'으로 분류돼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구매하도록 돼 있다.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경영의 부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유로운 구매에 제약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쨌든 이같은 규정에 의해 지난해 KT가 구매한 중소기업 제품은 1조9천473억원으로 KT전체 조달 규모 3조3천994억원의 57.3%에 달한다. 국내 IT관련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KT는 가장 안정적인 수요처 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익만을 최대의 목표로 하는 민간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문제가 있는 사업들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받아들여져 왔고 수행돼 왔다.
그러면 완전 민영화가 된 이후에도 KT는 이같은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떠넘기기식 공익서비스 부담은 안돼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KT는 민영화 이후에도 '돈 안되는 사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가 여러가지 법률로 민영화 이후에도 공익성이 지속되도록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97년 제정된 '한국전기통신공사법폐지법률'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KT는 '정보화 촉진과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 및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해' ▲'다른 회사가 구축하기 어렵다고 정보통신부 장관이 인정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의무 ▲ 정보통신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국가안전보장· 군사·치안 등 국가 중요통신의 안정적인 제공 등의 의무를 지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이밖에도 전기통신사업법, 정보격차해소법 등을 통해 KT로 하여금 공익적 역할 수행을 강제하고 있다.
보편적 서비스는 국민복지 차원에서 바람직한 것이며 선진국에서도 대부분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또 국내 통신시장에서 KT의 위상에 비춰볼때 어느정도 KT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국회에서 KT민영화가 통과될 때도 의원들 사이에서 KT의 공익성이 너무 약해지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고 이에따른 보완책으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의무를 KT에게 지우는 조건으로 통과시켰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공익서비스를 부과하는 KT를 바라보는 시각이 민영화 이후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효율적 경영에 전력해야 하는 KT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하는 관점에서 공익적 의무를 생각하고 부과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게 낮은 현행 보편적 서비스 적자 보전율을 현실화 하는 사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언젠가 민영화 된 KT의 소액주주들이 KT경영진을 상대로 회사의 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며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와 관련 정보통신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KT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민영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 거리"라고 말했다.
/백재현기자 bri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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