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시장 한 귀퉁이 닭 집은 '성지(聖地)'였다. 가지런히 누워 있는 우유 빛깔 생닭들. 20분만 참으면 후라이드 치킨이 봉지에 담겼다.
'바삭' 한 입 베어물 때마다 들던 생각. '아,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
그러나 어디 그 맛 보기가 쉽던가. 예나 지금이나 엄마들 지갑은 철옹성이다. 올백(전 과목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일을 이르는 말) 맞았을 때나 생일쯤은 돼야 떼 쓸 명분이 섰다. 방과 후 '치킨 존(zone)' 지나는 시간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통닭.
사람에게도 '파블로프의 개 실험(조건반사 실험)'이 통한다는 걸 입증하는 두 음절은 이제 미각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까지 접수해버렸다. 아이돌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운 '치킨 전쟁' 얘기다.
미국 간 원더걸스도, 음악 차트를 석권한 소녀시대도, '국민 꽃남' 김현중도, 빅뱅의 대성이도 '치킨의 얼굴'이 됐다. 톱스타가 찍기엔 좀 멋쩍은 광고로 여기던 치킨 CF에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뛰어든 이유는 뭘까.
굳이 '통닭 세대'를 구분하자면, 70년대 후반 이후 80년대까지가 1세대다. 오리지날 후라이드 치킨이 입맛을 사로잡고, 양념통닭이 골수팬을 확보한 시기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라는 신메뉴가 등장한 것도 이 때다.
88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 90년대 후반까지 치킨 시장은 성장을 거듭한다. 2세대 치킨은 한층 영리해졌다. 90년대 초반엔 전기구이와 숯불구이가 각축을 벌였고 후반 들어선 비타민, DHA가 들어간 기능성 치킨이 가세했다.
97년 환란은 여기에 신메뉴를 추가한다. 눈물 쏙 빼는 매운 맛, 찜닭 돌풍이다. 치킨과 장외전쟁을 벌인 찜닭은 사회상을 드러낸다. 구조조정 칼바람 속에 사람들은 식사와 술자리를 겸해 스트레스까지 풀 수 있는 찜닭의 '통각(痛覺)'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3세대.
2000년대 초반까진 새로운 소스가 인기였다. 일본의 데리야끼 소스 맛을 낸 간장 양념 치킨과 매운 소스를 바른 불닭이 구미를 당겼다. 중반 이후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웰빙과 저칼로리. 올리브유에 튀기거나 구워서 기름을 뺀 치킨이 시장 판도를 바꿔놨다.
약 30년 사이 치킨 시장은 이 처럼 쑥쑥 자랐다. 2007년 현재 시장 규모는 약 2조원. 같은 해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 휴대폰을 팔아 번 돈이 10조원 수준이니 치킨 시장의 규모가 짐작된다.

시장 규모가 급팽창하자 데면데면하던 스타와 치킨의 사이도 점점 가까워졌다.
80년대 개그황제 최양락이 'OO카나 치킨' 광고에 출연하면서 스타 마케팅의 문을 열었고, 90년대에 국민요정 '핑클'이 치킨CF를 찍으면서 아이돌의 치킨 전쟁을 예고했다. 이후 비, 신화, 쥬얼리, 동방신기, MC몽 등 숱한 스타들이 치킨의 얼굴을 자처했다. 높은 광고 단가 때문이다.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광고 업계는 치킨CF 모델료가 일반 광고보다 두 세 배 이상 높다고 귀띔한다.
개그맨 박명수는 치킨업체 홍보이사로 활동하면서 광고비 포함 수 억원의 개런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MC몽도 연간 2억원 이상의 모델료를 받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민 MC' 유재석 등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팀을 단체로 섭외한 한 업체는 광고비로만 30억원을 썼다는 후문이 돌았다.
치킨 업계가 통 큰 광고비를 내놓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치킨 시장은 대표적인 레드오션(Red Ocean, 붉은 피를 흘려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고,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다. 웬만한 대단지 아파트 상가엔 적어도 서 너개의 치킨집이 들어서 있다. 거리엔 한 집 걸러 한 집이 치킨집.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권 다투는 일은 이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 됐다.
선택의 폭이 넓으니 고객 변심도 쉽다. 맛과 친절, 신속한 배달은 기본. 여기에 플러스 알파가 더해지지 않으면 손님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스타의 힘을 빌리는 이유다. 불황기 창업 전선에 나선 예비 창업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스타는 꼭 필요하다.
스타마케팅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소녀시대를 모델로 쓴 업체는 지난해 조류 인플루엔자(AI) 속에서도 신규 가맹점이 200개 이상 늘고, 점포 평균 매출이 25% 신장하는 등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발표했다.
동방신기의 힘도 만만치 않다. 과거 한 치킨 업체가 주는 동방신기 콘서트 표를 얻으려고 동방신기 치킨을 100마리 이상 시켜먹은 팬의 이야기는 업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AI도 물리치는 스타 부적. 그래서 치킨 업계는 스타를 찾고, 스타의 몸 값은 점점 올라간다. 치킨 값이 점점 비싸지는 이유다. 어느덧 치킨 한 마리 값이 2만원에 근접해간다. 언제 이렇게 올랐지? 채 따져볼 틈도 없이 치킨 배달 오토바이는 오늘도 쌩쌩 달려나간다.
* 치킨시장 변천사는 (주)창업경영연구소 이호 이사의 글을 참고함.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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