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해서 벤처 기업을 1천억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키워 놓으면, 성장의 과실을 대기업들이 가로채갑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서도 이런 일이 허다합니다."
지난해 금융위기 속에서도 1천4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린 한 탄탄한 벤처기업의 실무담당자가 털어놓은 '리얼한' 현장 이야기다.
24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매출 천억 벤처기업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지난해 매출 1조 2천억원을 기록하며 벤처 매출 1조원 시대를 연 NHN이 최고 매출액 기업상을 받았다.
지난해는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1천억원을 올린 벤처기업이 200개를 돌파하기도 했다. '벤처=소규모 매출' 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벤처기업도 탄탄한 기반이 생겨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그러나 화려한 외면과는 달리, 여전히 벤처기업들은 대기업들과의 관계에서 '약자'임이 드러났다.
시상식 직후 중소기업청장과의 '소통마당'에서 이 실무담당자는 "말하기 전 고민을 많이 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담당자는 "매출이 4년 새 10배가 늘었는데, 당기순이익은 3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매출이 늘어나면 이익도 늘지만, 국내 대기업의 심한 단가인하 압박 때문에 순이익이 늘지 않는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기업은 매년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비에 투자, 신기술과 원가경쟁력을 확보해 겨우 적자는 피하고 있는 상황.
담당자는 "2005년도에 처음 내놓은 신제품 가격이 지금은 당시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지나친 단가 인하로 제품 가격이 내려가고, 기업은 이로 인한 적자가 나지 않도록 번 돈을 원가경쟁력 확보에 쏟아붓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시장 확대를 위해선 지속적인 연구개발 및 투자가 필요한데, 순이익이 늘지 않고 있어 기회가 자꾸 줄고 있다"며 "이런 구조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면 벤처기업사회도 부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1천억원 이상의 벤처들만 모인 자리였지만, 이 담당자의 이야기는 기업들의 공감대를 자아냈다.
행사에 참석한 홍석우 중기청장도 공감을 표했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묘안이 마땅치 않다"며 말끝을 흐렸다. 단순히 제도로만 해결하기 복잡한 구조적 문제임을 정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법적 제도를 마련해 놓았지만, 갑-을 구조가 뚜렷한 우리 기업 환경에서는 법적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담당자는 "앞으로도 대기업에 중소 벤처의 이익이 함몰되는 구조가 계속되면,1천억 매출 기업들이 계속 나올지 모르겠다"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이지은기자 leezn@i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