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여권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특히 당 지지율이 4년 반 만에 민주당에 추월당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당 지도부 사퇴' 요구가 공론화되는 등 여권은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혼돈 양상을 거듭하고 있다.
또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민심에 힘입어 총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여권 내부의 목소리마저 묵살한 채 북핵문제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강행돌파 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의 몰락하는 모습을 벌써부터 재연하는 듯 민심을 잃고 있다"며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막 1년 반 밖에 가지 못한 상황에서 앞으로 국정운영이 어떻게 될 지 걱정"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여당 지지율 급락…"해법이 없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난 직후인 지난 5월30일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27.3%)의 지지율이 한나라당(20.8%)을 크게 역전하자, 한나라당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초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도발로 상당히 상쇄됐다는 '낙관적(?)'인 분석을 근거로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었다.
지지율 역전 보도가 이어지자 한나라당은 부랴부랴 당내 여론조사기관인 '여의도연구소(이하 여연)'의 설문조사를 공개하면서 "아직 한나라당이 지지율 1위"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연의 설문조사에서조차 오차범위 안쪽인 단 0.6%의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오히려 스스로 민심을 잃고 있음을 증명해준 격이 됐다. '그나마' 차이라도 우세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여당의 다급함을 보여준 셈이다.
당내 한 관계자는 현 정국에 대해 "지금으로써는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당장은 돌파할 해법이 없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쇄신특위·소장파'vs'청와대·당 지도부'…내부분열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는 지난 2일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끝장회의'를 거쳐 "청와대 인적쇄신과 당 지도부 사퇴 없이는 쇄신위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초강수를 두었다.
원희룡 쇄신특위 위원장은 "당의 쇄신의지가 관철될 지 중대고비"라며 "쇄신위가 존속하지 않더라도 오는 4일 열릴 연찬회에서 의원들의 총의를 붙일 수 있도록 준비해둘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원 위원장의 이 같은 강경한 입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민심이반이 여권 지도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데도 불구, 특단의 대책 없이 소극적인 자세로 침묵을 유지하려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친이 직계 소장파 의원들도 반란(?) 대열에 동참했다.
정두언, 차명진, 권택기, 김용태, 임해규, 조문환, 정태근 등 7명의 의원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당 지도부 총사퇴 및 조기 전당대회 등 당·정·청 전면 개편이라는 초강수 개혁안을 들고 나섰다.
이들은 "정부 출범 후 1년 반이면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며 "국민의 뜻에 맞게 국정 기조와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정부여당 전반의 체질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압박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적지 않은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 공성진 최고위원도 스스로 쇄신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 "근본적인 쇄신을 위해서는 지도부 총 사퇴도 거론될 수 있다"며 쇄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 같은 당내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해 지금까지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표면적으로는 침묵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내심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박 대표 측근들은 "박 대표에게만 책임을 다 씌워서 사퇴를 요구하는가"라며 불만 섞인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는 또 최고위원회의 공개석상에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사자성어를 언급하며 스스로 당직을 내놓을 뜻은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청와대 측에서도 일단 당 쇄신위의 요구에 대해 일단 추이를 지켜보며 신중하게 대응하자는 입장이지만, 여권이 단결해야 할 시점에서 내분양상으로 가고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도 당이 청와대 고유의 인사권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에서 (청와대 인적 쇄신에 대해)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인사권은 대통령에 속한 문제"라며 정·청 쇄신 요구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또 대국민 담화 요구에 대해서도 이미 지난 1일 라디오연설에서 언급한 바 있다면서,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뭉친' 야권·시민단체 총공세…공안정국 '맞불'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현 정권에 대한 반발여론을 등에 업은 야권의 공세도 갈 길 바쁜 정부여당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내각 총사퇴 등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면서,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6월 임시국회를 열지 않겠다는 등 정부여당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이에 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등 진보진영 뿐 아니라 자유선진당·친박연대 등 보수야당도 이명박 정부의 국정쇄신을 요구하고 나서, 단합된 야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등 야4당은 6월 항쟁 22주기를 맞아 오는 10일 시민단체들과 연합해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6월항쟁계승 민주회복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反MB 여론몰이에 나섰다.
더불어 서울대 교수 등 학계와 사회 인사들의 국정전환 시국성명이 잇따르고 있어, 여권은 궁지에 처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내내 서울광장을 폐쇄했던 검·경 공안당국은 당분간 서울광장을 개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어 대규모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이는 집회를 방치했을 경우 지난 쇠고기 촛불정국 때처럼 국민적 저항여론이 구심점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원천봉쇄하겠다는 정부의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광장 봉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 공안당국은 "불법집회는 원천봉쇄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지 않을까"라는 주변의 우려만 깊어지고 있다.
박정일기자 comj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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