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 회담 결렬과 함께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 발동되면서 31일 국회는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단 정면충돌이 예상됐던 이날 새벽을 넘기면서 다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30일 밤 회동 결렬 이후 의원총회에서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민주당에 넘기면서 "폭력사태를 해소하기 위한 힘의 행사는 불가피하다"며 전의를 다졌다. 더 이상 타협과 협상은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협상 결렬 직후 당직자, 보좌진 등 300여명을 국회 본회의장 로텐더홀에 집결해, 질서유지권 발동에 대비했다. 이 자리에서 원혜영 원내대표는 "국회가 MB의한, MB를 위한, MB의 더러운 전쟁터로 전락했다"며 "적은 힘이지만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한나라당과 국회의 물리력에 의해 국민의 뜻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협상 결렬 직후 곳곳에선 민주당과 경위간 충돌이 곳곳에서 빚어졌다.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만큼 한나라당은 뒤로 빠지며 사태를 예의주시할 뿐이었다.
민주당 당직자 등이 본회의장앞에 바리게이트를 쌓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경위들과 충돌했고, 국회의장실 점거한 민주당 의원과 여 보좌관과 의장실 여직원, 경위들간 몸싸움을 벌였다. 또 본회의장에 음식물 공급을 시도하기 위한 민주당 보좌관들과 본관 재진입을 막는 경위들과 한차례 충돌이 빚어졌다.
협상 결렬과 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으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은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다. 민주당측 당직자 등 30여명은 본회의장 앞을 에워싸고, 연좌농성을 벌였다. 본회의장내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등산용 자일 등의 장비로 '인간사슬'을 만들어 의장석과 비상계단을 사수하는 도상연습에 들어가는 등 결사항전의 채비를 마쳤다.
민주당은 전날 한나라당 소속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들이 의총을 마친 뒤 이날 오전 9시 의총을 다시 열기로 하고 귀가했다는 소식에 다소 안도했다. 그러나 경위들이 언제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민주당 일부 당직자 등은 선잠을 자면서도 일부는 불침번을 서는 등 방어에 나섰다.
31일 새벽이 깊어지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은 다소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국회 경위, 방호원 150여명은 국회내에서 비상대기하고 있고, 국회 경비대 소속 경찰 170여명도 국회 정문 출입문을 통제하는 등 긴장된 상황은 유지되고 있다.
일단 31일 새벽까지는 민주당측과 경위간 정면충돌을 피했지만 이날 오전 9시에 예정된 한나라당 의총 이후 또다시 국회가 긴박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렇더라도 상황은 다소 유동적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 주선'을 요구했고, 김형오 의장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물리적 충돌과 직권상정에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만큼 김 의장으로서는 민주당의 대화제의를 뿌리치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변수다. 한나라당은 여야 협상이 결렬된 만큼 쟁점법안 연내 처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30일 협상 결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방송법이 격렬한 논쟁 끝에 안됐는데 핵심법안을 빼놓고 질서유지권을 행사해 처리하려고 하면 의원들이 동의하겠는가"라면서 "국회의장이 충분하게 판단하리라고 믿는다"고 김 의장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당초 홍 대표는 "협상이 결렬되면 모든 게 '무효'"라고 못박아왔던 터라 85개 법안 일괄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의총를 열고 85개 법안 처리 방안에 대한 전략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제는 김 의장의 선택이다. 그간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요구했던 김 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면서 극단의 방법을 취할지와 어느 범위까지 직권상정을 하게 될지가 관건이다.
김 의장이 지난 29일 "여야가 합의한 민생법안은 연내에 처리하겠다"고 밝혀, 법사위에 계류 중인 53개의 법안을 직권상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미FTA비준동의안·미디어관련법' 등을 포함한 한나라당의 85개 법안을 일괄 상정·처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김 의장이 현 국회상황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는 만큼 또 다시 중재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 의장이 재차 중재안을 제시한다고 해도 한나라당이 수용할지는 불투명해, 정국이 어디로 흐를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사실상 중재안이 한나라당의 양보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의장이 직권상정하는 법안 내용을 보겠다"며 "만약 중요법안과 상관없는 법안을 직권상정한다면 우리도 (본회의장에)들어가는 걸 잘 검토해보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2008년을 하루 남겨놓은 31일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대치에 종지부를 찍을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철기자 mc07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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