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겠다"며 대운하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당시 국토해양부 산하 대운하추진 사업단도 해체하는 등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에서 손을 떼는 듯 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여만에 대운하 추진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운하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4대강 정비사업'으로 말이다.
정부는 느닷없이 '미래 대비 물관리'를 위해 7천800억이라는 규모의 예산을 책정했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추부길 전 청와대홍보기획비서관이 4일 한반도대운하 재추진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추 전 비서관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녹색성장을 위해 (대운하는)굉장히 중요한 프로젝트"라며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국민이 반대해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이렇듯 대운하를 재추진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련주가 줄줄이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이달 말로 예정된 정부의 지방경제 활성화 대책 발표 때 '대운하 건설계획'이 포함될 것이라는 등 대운하 관련 소문들이 증시에서 나돌고 있다.
그 동안 정부여당은 이 대통령의 중단선언 이후 대운하에 대한 언급을 극히 자제해 왔다. 한나라당 의원들마저도 "대운하는 중단됐다",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대운하 논쟁에 진절머리를 내기도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운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4대강 정비사업', '환경보전'이라는 명분으로 그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물론 매년 반복되는 홍수 피해와 만성적인 수량 부족, 침전물 누적으로 오염된 하천들의 본래 치수, 이수기능 회복을 위해선 하천정비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정부의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환경보전 측면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다. 촛불정국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여론에 밀리자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제는 말을 바꿔 '하천 정비사업이다. 환경보전이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동안 대운하는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 국면은 물론, 올들어서도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겪으면서 물류혁명→관광운하→4대강 하천정비사업 등으로 '명분의 색깔'을 바꿔 왔다.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핵심과제로 내놓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일환이라고까지 포장하고 있다.
하천정비든, 이수·이수사업이든, 친환경사업이든, 녹색성장으로 포장하든 정부가 대운하를 포기했다고 보는 이는 없다. 정부가 포장해 놓은 하천정비 사업은 대운하 건설 추진을 위한 기초 공사에 다름 아니라는 것 쯤은 국민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대운하 추진은 안한다고 하니, 이명박 정부의 국민 눈속임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차라리 대놓고 "대운하를 하겠다"고 밝히는 게 더 솔직한 모습 아닐까?
더 이상 감언이설로 국민들을 현혹시키지 말고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그토록 외쳐온 'MB노믹스'가 국민적 지지와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금융위기에 이명박 정부가 비상대책을 쏟아냈음에도 시장이 왜 진정되지 않았는지, 또 왜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때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