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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향하는' 왓슨연구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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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여간 대차게 퍼붓던 비 때문이었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강렬한 6월 햇살이 내리쬐이는 연구소의 풀내음이 싱그럽다.

미국 뉴욕주 요크타운에 위치한 IBM 왓슨연구소 앞마당에 내려서니 첨단 컴퓨팅 기술 연구의 격전지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조용한 시골의 한적함마저 감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영어 대신 반가운 우리말이 들려 돌아보니 세계적인 컴퓨터 공학의 석학 류경동 박사가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류 박사는 재미한인정보기술회장과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IBM 왓슨연구소에서 컴퓨팅 부문 미래기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일에 참여했다. 지금은 사람이 사용하는 컴퓨터 환경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하나. 첨단 컴퓨팅 기술을 통해 결국 사람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바꾸기 위해서다.

◆'어딘가'에 연결되면 슈퍼컴이 내 PC로

"1~2년만 지나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환경을 완전히 바꿀 수 있게 될 겁니다."

류 박사가 자신하는 기술은 다름아닌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구름 속의 컴퓨터 기술'.

"구름 속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알 수가 없죠?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형태로 돌아가는지 알 필요가 없는데, 자꾸 알아야되는 상황이 와버렸어요. 결국 편리하려고 사용하는 컴퓨터 때문에 관리 비용도 많이 들고 사람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닷컴 등에서 이미 심심찮게 화두가 되고있는 용어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구현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구닥다리 386 PC이건, 최신 쿼드코어 컴퓨터이건, 혹은 휴대폰이나 어떤 형태의 장비라도 최신 3D 게임이나 기업의 복잡한 회계 프로그램을 불러내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이를 위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들을 약간 수정하거나 전용 단말기를 구입해 연결하거나, 스마트칩을 단말기에 내장시켜야 하는 걸림돌이 있다.

하지만 IBM에서 류 박사가 얘기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더욱 완벽한 '개인 환경'을 제공한다. 소프트웨어를 고치지 않더라도, 단말기를 새로 구입하지 않아도 인터넷이라는 구름(클라우드)을 통해 '어딘가'에 있는 중앙 시스템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

"개인의 책상 위에 있는 오래된 PC가 필요할 때는 슈퍼컴퓨터만큼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류 박사는 설명했다.

IBM의 가상화 기술과 실제 슈퍼컴퓨터급의 강력한 데이터센터, 그리고 이를 연결해 주는 '알 수 없는' 클라우드 컴퓨팅 소프트웨어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도 컴퓨터로 예측·진단

사람을 향한 연구는 '스트림 컴퓨팅'에서 꽃을 피운다. 영화나 음악을 다운로드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재생해 보는 것을 '스트리밍'이라 하는데, 이처럼 컴퓨터가 데이터를 수집해 연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한꺼번에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초강력 컴퓨팅이 바로 스트림 컴퓨팅이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교통량을 측정하는 카메라에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중앙 컴퓨터로 날아들면, 컴퓨터는 이를 연산해 교통량이나 사고 현황, 위반 사항 등을 분석하게 된다.

하지만 이 데이터가 마치 하나의 점처럼 수만, 수십만배로 늘어났을때 컴퓨터가 일일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스트림 컴퓨팅 기술은 이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게 류 박사의 설명이다.

"음악을 재생하려면 컴퓨터가 음악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 전용 프로그램을 실행해 재생하잖아요? 하지만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은 컴퓨터에서 이미 재생된 음악 데이터를 받아 사용자에게 들려주는 것이죠."

즉 데이터가 이미 연산돼 사용자가 원하는 특정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로 '가공'돼 컴퓨터에 나타난다는 것.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원하는 상태로 가공하려면 초강력 슈퍼컴퓨터가 필요하지만 스트림 컴퓨팅이 활성화 되면 일반 PC에서도 이같은 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류 박사는 설명했다.

스트림 컴퓨팅은 국내에서도 IBM과 협력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반가운 설명도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이나 중증 환자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센서 정보를 실시간으로 병원에서 수집할 뿐만 아니라 스트림 컴퓨팅을 통해 환자의 센서 정보가 어떤 움직임을 담고 있는지, 예를 들면 갑자기 쓰러지거나 호흡 곤란을 일으켰는지와 같은 '연산 결과' 정보까지 제공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 '파워' 제공하는 따뜻한 슈퍼컴

물론 류박사가 설명한 IBM의 미래 컴퓨터 기술이 실제로 개인의 PC에서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이 능력은 초강력 연산을 실행할 수 있는 대형 슈퍼컴퓨터에서 나오며, 이를 IBM의 기술로 개인의 PC나 기업의 시스템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대형 슈퍼컴퓨터는 꼭 '내 것'이 아니더라도 참여와 공유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IBM 왓슨연구소 내에는 전세계에서 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강력 슈퍼컴퓨터가 실제로 구동되고 있는데, 이 역시 이같은 연구와 컴퓨팅 능력을 제공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블루진/L'이라는 이름의 이 슈퍼컴퓨터는 IBM의 RISC 프로세서 기반 파워 570 칩셋 880개를 이용해 구축됐으며 1초에 수백조번의 연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신 슈퍼컴퓨터인 '블루진/P'에는 물을 이용한 냉각방식으로 더 빠르면서도 전기 사용량은 적은 친환경 구성까지 채택됐다.

"슈퍼컴퓨터가 계산하고 있는 데이터들은 저 하늘너머의 공상과학이 아니라 불과 1~2년후면 우리 눈앞에 펼쳐질 실생활 기술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을 향한 연구에 대해 설명하는 류 박사의 미소는 6월의 햇살보다 따뜻했다. 시끄러운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슈퍼컴퓨터에도 역시 사람을 향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요크필드(미국)=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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