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가족의 경조사 외에는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다."
두번만 빠져도 바로 퇴출되는 '살벌한' 스터디 모임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차세대 운영체제(OS) 윈도서버2008'을 연구하는 '윈도서버2008 파이오니아'라는 모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정도 규율이라면 대학생들이 만든 모임일 것이란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모임의 주축은 일 많기로 유명한 IT엔지니어들이다.
퇴근 후 모임을 갖는 상황임에도 이렇게 엄격한 규율을 세웠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날까 싶었다. 그런데 지난 1년 3개월 동안 퇴출된 인원은 겨우 6명뿐이라고 한다.
아무리 한 달에 한 번 갖는 모임이라지만 이 정도로 충성도가 높은 데엔 분명 '뭔가' 있다.
◆IT 인맥과 정보의 장
"윈도서버2008 출시를 앞두고 함께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창을 만들기 위해 스터디 모임을 구상했어요."
'윈도서버2008 파이오니아'라는 이름이 붙은 이 모임의 발족자는 다름아닌 한국MS. 개발자 플랫폼 사업총괄을 맡은 백승주 과장이 이 모임을 총괄하고 있다.
역시 이 독특한 모임은 한국MS가 IT엔지니어들을 확보하고 앞으로 출시될 제품을 보다 확산시키기 위해 꾸린 것이었다. 그 '뭔가'란 결국 한국MS의 지원이었던 걸까.
"MS의 지원이요? 스터디 장소와 스터디 시작 전에 제공되는 도시락이 전부에요."
혹시 한국MS의 아낌없는 지원이 모임의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싶어 묻자 백 과장은 딱 잘라 대답한다. 그가 덧붙인 말에 의하면 엔지니어들이 연구하기 위한 교육자료 정도는 한국MS가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뭘까. 44명에 이르는 모임 참가자들이 한 달에 한 번 모든 일을 제치고 참석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는 회원에게 물었다.
"정보 때문이에요. IT인맥을 쌓을 수도 있고요. 사실 IT엔지니어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절대 풀어놓지 않거든요. 이 곳에 오면 IT인맥과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어요."
필라넷 유정현 주임엔지니어의 말이다. IT엔지니어 세계에서 돈보다 중요하다는 '정보'가 있기 때문에 모임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IT엔지니어의 '몸값'이나 다름없다는 정보가 흘러다니는 곳이라면야 만사 뒤로하고 스터디 참석에 '올인'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윈도서버2008이 아직 출시된 제품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장 처음 이를 이용해보고 연구하는 겁니다. 영문 매뉴얼을 보고 직접 적용해보고.
이렇게 얻어지는 정보도 무시할 게 못 됩니다. 그대로 저만의 지식이 되는 거니까요. 게다가 모임 참가자들이 서로서로 도움도 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지요."
호스트웨이 정진한 과장 역시 '개근생'이다. 그는 "처음에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웠는데 지금은 공부하고 적용, 테스트까지 마치면 한 달이 부족하다"고 했다.
◆정보로 연결된 '끈끈한' 유대관계
좋은 것은 나눠야한다는데 왜 기존 회원들은 신규 회원을 추천하지 않는걸까.
"모임의 성격이 좋고, 얻을 수 있는 게 많아서 누구를 추천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아요. '연대책임'이라는 게 있거든요. 제가 누구를 추천했다가 2번 불참해 퇴출되면 추천받은 사람도 자동으로 퇴출됩니다."
정 과장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이 모임의 규율은 '삭막'하다못해 '살벌'할 정도다.
덕분에 모임 참가자들의 유대관계는 매우 끈끈하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갖는 정기모임 외에도 수시로 만나는 자리인 '벙개'와 그룹메일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윈도서버 관련된 일뿐 아니라 현업에 관련된 일도 막히는 게 있으면 그룹메일을 통해 모두에게 묻는 거에요. 그러면 누군가가 답을 해줍니다. 그야말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돕는거죠."
유 주임엔지니어에 따르면 모임에서는 '윈도서버2008'에 대한 연구 외 주제에 대해서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공유가 일어난다.
이처럼 모임이 활성화되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나라들이 '윈도서버2008 파이오니아'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도 비슷한 모임이 생겨난 것.
"AP에서 제대로 활성화된 첫번째 모임이다보니 주목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싱가포르 등의 모임도 한국처럼 엄격한 규율을 적용할 지는 모르겠네요."
모임의 '살벌한' 규칙을 만들어 낸 백 과장이 농담처럼 다른 나라의 소식을 전했다.
◆엔지니어로서 '브랜드' 향상
엄격한 규칙 속에서 1년 3개월을 보낸 '윈도서버2008 파이오니아' 엔지니어들은 그동안 무엇을 얻었을까. 이들이 IT인맥과 정보를 얻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을까.
"3월에 '윈도서버2008'이 론칭하면 사실상 이 스터디 모임의 목적은 끝이 나는 셈입니다. 출시 전에 이를 연구하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었으니까요.
1년이 넘게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으면 당연히 남는 거이 있어야겠지요.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스터디에 임해준 엔지니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엔지니어 스스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같은 생각에 백 과장은 '윈도서버2008'과 관련된 세미나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모임의 회원들을 강사로 초빙하거나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오는 3월 있을 론칭 행사에서도 이들 회원들이 '전문가 상담' 코너를 맡게 될 예정이다.
물론 3월 이후에도 모임은 지속될 예정이다. 그때는 '윈도서버2008'이 아닌 '윈도'라는 OS 전체를 보다 깊이있게 공부하는 모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살벌한' 규칙 역시 지속될 예정이다.
함정선기자 mint@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