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태헌 기자] 정부 여당이 치솟는 물가를 잡자면서 기업까지 잡고 있다. 정부에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행동대장'으로 나섰고, 정치권에서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군기반장'을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의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에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으니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 가격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시민단체에 공을 넘겼다. 기다렸다는 듯 소비자단체들도 입장문을 내고 '라면값을 인하하라'며 업계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또 김기현 대표도 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아직 예측 수준이지만 후반기에 전기·가스요금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하반기 관련 요금 추가 인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교롭게 한국전력은 이날 3분기 전기요금 동결을 선언했다. 이미 한전은 전기요금 동결 등으로 수십조원대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한전의 요금 인상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올해 2월에는 소주 가격 인상이 점처지자 기재부가 나서 '인상 요인이 있는지 살피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국세청은 주류업계를 불러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 뿐인가, 같은달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주요 식품기업 12개사 대표들과 가진 '물가안정 감담회'를 통해 "최근 식품물가가 엄중한 상황"이라며 업계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정부의 전방위적 공세에 주류업계와 일부 식품업계가 결국 가격 동결을 선언했고, 한전 역시 전기료 동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최근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라면 업계 역시 가격 인하 검토 입장을 내놓으면서, 겉으로는 정부의 물가인하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 들어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번 정부가 정말 '자유시장'을 그토록 강조하던 윤석열 정부가 맞는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최근까지만 해도 전임 문재인 정부가 전기와 가스요금을 억눌러 요금 인상폭이 커졌다며 책임을 묻던 이들이 지금은 입장을 180도 바꿔, 비판의 대상보다 더 혹독할 정도로 기업들의 팔을 비틀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하의 기업이라면 당연히 이윤을 추구해야 하고, 영업이익을 발생 시켜야 한다. 그래야 고용된 근로자들이 임금을 받을 수 있고 주주들도 배당금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정상적 절차를 거쳐 기업이 자율적 방식으로 가격을 인하하고 소비자가 저렴하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제품가가 비싸다면 당연히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가격을 내려야 생존이 가능해 진다. 소비자는 비싼 소주나 라면 대신 그보다 저렴한 제품을 선택할 것이고, 선택을 받기 위해 개별 기업은 가격 경쟁에 돌입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장 논리라는 의미다.
기업을 압박해 당장 소주값 50원, 라면값 50원을 인하한들 서민생활에 무슨 큰 도움이 되고 이익을 가져다 주겠는가. 정부 압박에 잠시나마 가격을 인하하고 동결하면, 결국 누적된 비용은 한번에 더 큰 가격 인상을 불러오게 되는 것은 상식적이다.
정부의 말 한마디에 연일 라면과 제분, 전기 관련 주가까지 곤두박질 치거나 출렁이고 있다. 외국인들은 관련 주식 매도에 나섰고, 일부 주가는 52주 신저가를 갱신하기도 했다. 벼룩 잡으려다 초가산간 다 태울 판이다.
정부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물가를 잡으려는 의지와 의도는 잘 알겠다. 하지만 그 이후 폭발할 물가 인상은 어떻게 수습할텐가. 억눌렀던 공공요금과 물가가 한번에 오르면 서민들은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지도 모른다. 이번 정부의 힘을 통한 '관치'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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