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가 지난해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매출 300조원 돌파를 달성하며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쏘아 올렸다. 다만 글로벌 소비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같은 해 4분기 매출이 시장 기대치 이하인 데다 영업이익도 70%가량 뚝 떨어져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4조3천억원을 기록했다고 6일 밝혔다. 매출은 전기 대비 8.83%, 전년 동기 대비 8.58% 줄었고, 영업이익은 전기 대비 60.3%, 전년 동기 대비 69%나 감소했다. 삼성전자 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 대를 기록한 것은 2014년 3분기(4조600억원) 이후 8년 만이다.
시장 전망치에도 한참 못 미쳐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6조9천254억원이었으나, 실제로는 2조6천억원이나 하회했다. 매출도 컨센서스(72조7천531억원)를 약 2조7천억원 밑돌았다.
그러나 연간 매출은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301조7천667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3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21년 279조6천48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기록한 지 불과 1년 만이다. 삼성전자의 매출 300조원 돌파는 창립 이래 최대 성적이자 국내 기업사에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업이익 60조원 돌파는 결국 이뤄지지 않아 '300·60클럽' 진입에는 실패했다. 시장에선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매출액 300억원, 영업이익 60조원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봤으나, 지난해 3분기부터 소비 침체 여파로 전 사업 부문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탓에 결국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한 43조3천700억원에 그쳤다. 다만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8년(58조8천900억원), 2017년(53조6천500억원), 2021년(51조6천339억원)에 이어 역대 4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연간 실적 역시 시장 추정치 보다는 낮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304조7천210억원, 영업이익은 45조9천811억원으로 추정됐다. 영업이익은 추정치보다 5.7%가량 저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해외 매출 비중이 80% 이상이어서 원·달러 환율 하락도 실적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며 "달러로 환산한 4분기 삼성전자 매출은 532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8%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효자'였던 반도체, 영업익 '뚝'…1분기 '적자' 예고
이날 사업 부문별 실적이 공개되진 않았으나,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이 1조5천억원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봤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반도체 부문 예상 영업이익을 기존 2조6천억원에서 1조5천억원으로 42.3% 줄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8조8천억원) 대비 83% 급감한 수준이다.
반도체 부문의 실적 악화는 지난해 3분기부터 감지됐다. 2분기에는 10조3천8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3분기부터 메모리 시황 악화 충격 여파로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31.4% 감소한 5조1천560억원에 그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소비 위축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로 주력 제품인 D램, 낸드플래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인 탓"이라며 "고객사의 주문량이 급감하고 메모리 반도체 재고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0월 D램(PC향 범용제품 기준)과 낸드플래시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22.46%, 3.74% 떨어졌다. 11월에는 보합세를 보이다 12월에 다시 하락했다.
수요 감소 탓에 재고자산도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재고자산은 57조3천198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38.5% 늘었다.
시장에선 올해도 삼성전자 반도체 실적이 암울할 것으로 봤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혹한기'가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PC D램 범용제품의 고정거래가격이 지난해 4분기보다 15~20% 하락할 것으로 관측했다. 수출입은행은 연간 기준 D램 평균 가격이 전년 대비 35%, 낸드플래시 평균 가격은 11%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2년간 호황기를 누렸던 파운드리 시장 역시 어두운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스마트폰, PC, TV 등에 들어가는 칩 수요가 감소하면서 파운드리 업체에 쇄도하던 위탁 생산 주문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에 재작년 100%에 달한 전 세계 파운드리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 4분기 86%로 떨어졌다. 올해도 PC 출하량은 5~10% 감소하고 스마트폰 출하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도 암울하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5천565억 달러(약 706조5천880억원)로 지난해(5천801억달러) 대비 4.1%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상황 탓에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695억원 적자로 예상했다. 하이투자증권은 280억원 적자, BNK투자증권은 무려 2천900억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하게 되면 지난 2009년 1분기(6천700억원 적자) 이후 14년 만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올해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 목표를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잡았다. 지난해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25조4천509억원(증권사 추정치 평균)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경쟁사들처럼 감산에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은 지난해 4분기에 공급 축소에 나선 바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앞서 반도체 업황이 악화되도 인위적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 회복을 앞당길 수 있는 핵심 요인은 삼성전자의 감산 동참 여부"라며 "세계 1위 생산업체인 삼성전자가 공급량을 크게 줄여야 수급이 안정되고 가격도 하락세를 멈출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크게 하락해 손익분기점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삼성전자가 공급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 수요 부진·원가 압박에 흔들린 모바일·가전…"총체적 난국"
모바일 사업도 실적이 크게 하락해 지난해 4분기에 분기 기준 최저 매출을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코로나 봉쇄 등에 따른 수요 부진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대비 11% 감소한 12억4천만 대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전망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선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X와 네트워크 사업부(구 IM)가 지난해 4분기 동안 1조원대 후반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관측했다. 전년 동기보다 1조원 내외 감소한 수치다.
이는 원재료 가격 상승 영향도 컸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3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스마트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가격은 전년 대비 8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카메라 모듈은 전년보다 10% 올랐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 출하량은 기대와 달리 한 자리 중반 감소하고, 평균판매가격(ASP)도 두 자리 하락이 예상된다"며 "결과적으로 지난해 4분기 MX 매출은 2022년 최저치를 기록하고, 마진도 한 자릿수 중후반 수준까지 악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4분기 스마트폰 출하는 3분기 대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며 "수요 부진, 신흥국 경기 상황 악화로 추가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가전 사업의 어려움은 더 컸다. 지난해 4분기 생활가전·TV를 담당하는 CE 사업부는 2천~3천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관측된다. 전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블랙프라이데이 등 특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CE 사업부 역시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것이 실적에 큰 타격을 줬다. 또 공급망 차질에 대비하기 위해 원재료를 적극 확보했지만, 수요 침체가 지속되면서 재고가 급증한 것도 영향이 컸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은 57조3천198억원으로, 전년 동기(37조8천17억원) 대비 51.6%나 늘었다.
TV 시장이 쪼그라든 것도 실적 악화를 이끌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글로벌 TV 출하량이 지난 2020년 2억2천535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21년 2억1천354만 대, 지난해 2억452만 대로 감소세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에도 팬데믹 버블이 형성됐고, 조정이 진행 중"이라며 "블랙 프라이데이와 월드컵 특수가 겹쳤음에도 TV와 가전 수요는 의미 있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형님보다 낫다"…삼성D, '아이폰' 덕에 선방
삼성전자가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 전 사업 부문에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것과 달리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4분기 동안 다소 선방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에선 삼성디스플레이의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한 1조7천740억원일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주요 고객사인 애플이 '아이폰' 생산에 차질을 빚은 탓에 전 분기(1조9천800억원)보다 영업이익은 다소 감소했다.
연간 실적 역시 기대 이상일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해 매출 36조원, 영업이익 6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모두 2017년 기록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다. 이는 지난해 공개된 '아이폰14' 시리즈 효과 덕분으로,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14' 시리즈 OLED 패널을 약 70% 공급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말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 기준을 연봉의 47~50% 수준으로 정했다. OPI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대표적인 성과급으로, 각 사업부별로 연간 실적 목표를 초과 달성할 시 초과 이익의 20% 한도에서 개인 연봉의 최고 50%까지 지급한다. 지급 시점은 이달 말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디스플레이 시장이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돼 전방 산업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 대부분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스마트폰 시장의 수요 부진과 애플의 아이폰 생산 차질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도 작년 4분기에 다소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으나, 지난 한 해 동안에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좋은 흐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을 기록한 탓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실질적인 비상 경영 체계에 돌입해 내부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전사적으로 해외 출장, 소모품 비용 등 불필요한 경비를 절감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일 저녁 시무식에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40여 명을 서초사옥으로 불러 모아 '비상경영'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황이나 소비 심리 등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변수가 워낙 커 비상경영 체제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최근 안정세를 보이면서 원재료·물류비 등 생산 원가 부담이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전자의 올해 실적 악화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삼성전자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파운드리 사업으로 기존 사업의 부진을 올해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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