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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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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SKT 1996년 CDMA 상용화 당시 모습 [사진=SKT]
SKT 1996년 CDMA 상용화 당시 모습 [사진=SKT]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국가 주도 정보통신 육성은 1994년 3월 민간 자율경쟁 구도로 전환됐다. 선경그룹의 한국이동통신 인수가 결정되고 제2이동통신사로 포항제철과 코오롱그룹이 이끄는 신세기통신이 확정됐다.

같은 시기 ETRI와 LG정보통신(당시 금성정보통신),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3개 통신설비 제조업체는 공동개발중인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이동통신시스템으로 시험통화에 성공했다. 이 시험통화는 이동전화 단말기와 단말기간, 이동전화 단말기와 일반 가입전화간 진행해 통화 품질 양호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변화가 일어나자 그에 따른 대대적인 투자도 한결 더 수월해졌다. 대표적으로 한국이동통신 소속으로 CDMA 기술개발을 주도했던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이 선경그룹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선경그룹은 비용뿐만 아니라 사업관리단이 준비 중이었던 사용자 요구사항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댔다. 개발업체의 성취 욕구를 자극하는 한편, 장비의 결함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시험통화를 성공시킨 사업관리단은 예정대로 개발업체들을 대상으로 상용시험계획서를 발송했다. CDMA 개발을 위한 일종의 모의시험을 치루겠다는 의도였다. 주요 내용으로는 통화시험 등의 기본적인 예비시험을 치룬 후에 통과한 업체들에게 한국이동통신 서울 장안동 사옥에 시스템 설치 자격을 부여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 현대전자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같은해 8월 개발업체들을 대상으로 108가지 항목에 대한 예비시험이 실시됐다. 이를 위해 사업관리단은 선경그룹과 함께 서울 장안동 연구실에 이동통신 시스템과 단말기, 기지국 상태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시험장비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예비시험을 통과한 업체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였다. 약속대로 서울 장안동 연구실에서 상용시험기를 가동했다. 탈락한 LG정보통신은 재시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상용시험기를 가동한 이 때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9월말 ETRI와 퀄컴이 공동 추진한 CDMA 방식 디지털 이동전화 시스템 개발이 종료됐다. 이동전화교환기와 제어국, 기지국, 가입자 위치 등록장치 등에 대한 개발이 완료됐다. 단말기는 LG정보통신, 삼성전자, 현대전자뿐만 아니라 맥슨전자가 차량용 시제품을 개발했다. 이동전화로 불린 휴대폰의 경우 연말까지 개발을 마칠 계획을 알렸다.

개발된 CDMA 이동전화 시스템은 서울 시내 12개 지역에서 900명을 대상으로 1995년 3월까지 성능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1995년 10월부터 3개월간 시험운용을 진행해 예정대로 1996년초 상용화에 나서기로 했다.

◆ 기지개 켠 신세기통신…빠른 걸음 한국이동통신

한국이동통신이 선경그룹을 등에 업고 CDMA 개발에 매진하는 동안 반대편인 신세기통신 역시 부산하게 움직였다. 1994년 10월 신세기통신은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등 CDMA 시스템 제조업체에 장비구입을 위한 제안요청서를 발송했다. 이 요청서는 11월 중에 접수를 진행키로 했다. 이후 한달간 심사와 평가를 거쳐 12월초 시스템 공급업체를 최종 선정하기로 했다.

시험내용은 한국이동통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동전화교환기와 기지국제어기, 기지국 가입자 위치 등록기 등을 공급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서류심사뿐만 아니라 현장확인심사도 병행하기로 했다. 일반사항과 기술사항, 가격 등의 3개항을 종합평가에 최종 공급업체를 결정한다는 계획이었다.

신세기통신이 제안요청서를 발송한 이후 경쟁사인 제1이통사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월 18일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시스템 운용 시험에 성공했다.

이날 한국이동통신은 대전시 대덕 중앙연구소에서 윤동윤 체신부 장관을 비롯한 정보통신 관계자뿐만 아니라 조병일 한국이동통신 사장 등이 참석해 시스템 운용 시험에 나섰다. 시험 내용으로는 CDMA 시스템과 아날로그 시스템, CDMA 시스템과 공중전기통신망(PSTN) 시스템, CDMA 시스템과 CDMA 시스템 간의 상호접속이었으며, 모두 성공했다. 즉, CDMA 방식의 첫 시험통화가 이뤄진 셈이다.

이 기세를 몰아 한국이동통신은 서울 장안동 집중운용보전센터에 3대의 교환기를 설치하고 구역을 나눠 CDMA 상용시험에 착수했다.

그리고 연말, 체신부는 1994년 12월 29일 신세기통신에 식별번호 017을 부여한다. ‘디지털 017’의 시작점인 셈이다.

◆ 쉽지않은 상용시험…TDMA 악연 재현

1994년은 CDMA 개발을 마치고 모의고사까지 마친 한 해 였다. 1995년은 상용화를 위해 실제 망 구성에 나서야 할 시점이었다. 즉, 연구소에서 나와 현장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했다.

물론 연구소 밖은 위험했다. 우선 기존 상용망인 아날로그망에 연동시켜야 했다. 아날로그 주파수 대역에서 CDMA 운용 주파수를 뽑아내야 했다. 그 과정이 꽤나 험난했다. 자칫 잘못하면 불통만 초래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상용망과 연동시킨다는 것은 결국 상용망을 망칠수도 있는 예민한 작업이었다. 게다가 아날로그 시스템만을 운용해오다 독자 개발한 디지털 시스템은 운용한다는 것은 해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결론적으로 상용망 시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교환기와 단말기 개발, 기지국 최적화, 시스템의 완벽한 구축 등 수많은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혼자서도 갈 수 없었다.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통신장비제조업체, 단말기 제조업체 등이 똘똘 뭉쳐야 했다.

한국이동통신의 경우 실제 현장은 이랬다. 기지국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에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만 작업을 수행했다. 한국이동통신 직원뿐만 아니라 해외업체 직원과도 함께해야 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산으로 가지 않도록 신경써야 했다. 이 시간을 한마디로 ‘전쟁’이었다 표현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1995년 3월 한국이동통신은 사업관리단장이었던 서정욱 단장을 대표로 맞이하게 된다. 이전 개발사업단은 한국이동통신의 디지털사업본부로 개편했다. 전사적으로 CDMA에 올인하는 조직으로 셋팅했다.

이후 한국이동통신은 상용망 연동을 진행하면서 예비시험을 치루고 본시험을 치뤄야 하는 통신장비제조업체 선정절차를 밟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본시험을 통과한 기업은 LG정보통신이었다. 1995년 5월 8일 예비시험에서 떨어졌지만 당당히 본시험을 통과한 LG정보통신이 1차 수도권 지역 CDMA 방식 디지털 이동전화 시스템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LG정보통신의 시험결과로 총 933개 항목에서 가장 높은 77% 통과율을 기록했다. 시스템 공급능력과 납품일정, 선능, 신뢰성, 상용시험 중간결과, 경제성 등의 종합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셈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38%, 현대전자가 34%를 기록했으니 비교될만 했다. 절치부심한 LG정보통신은 1995년 1월에도 시스템상용실험에 합격점을 따내기도 했다.

경쟁사였던 신세기통신 역시 CDMA 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했으나, 시련은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1995년 5월 11일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 획득을 준비하던 한국통신이 PCS 무선접속기술로 시분할방식(TDMA)을 개발하겠다고 밝히면서 또 다시 CDMA와의 기술 표준 경쟁이 부상했다. 그나마 CDMA로 방향이 모아지는가 했으나 다시 분산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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