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영웅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부동산 정책을 놓고 갈지자(之)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비사업 규제완화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하루 만에 '조속한 시행'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책임론을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인수위는 입장을 번복한 전례가 있다. 새 정부 부동산 종합대책을 이달 발표하기로 했다가 국토교통부 장관 청문회 자리에서 밝히겠다고 하더니 아예 발표시기를 늦춰버렸다. 서울 강남과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국지적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수위의 이같은 행보는 시장의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교언 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 팀장은 2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어제(25일) 나온 기사 대부분이 '중장기 검토과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표현에 대해 오해가 생길 것 같아 정정한다"며 "조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전날 새 정부의 1기 신도시 부동산 정책과 관련, "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가 중장기 국정과제로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인수위는 이같은 입장을 하루도 안 돼 번복한 셈이다.
심 팀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고 조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대규모 이주에 따른 임대차 시장 혼란 등을 막기 위한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3기 신도시의 이주 전용 단지 확보 등 이주계획을 수립하는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노후주택 안전진단 면제공약 폐기 수순
인수위가 정비사업 규제완화에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KB부동산이 발표한 월간 KB주택시장 동향(11일 기준)에 따르면 송파구와 광진구, 서초구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정비사업 단지 위주로 상승, 각각 0.58%, 0.31%, 0.24% 상승했다.
1기 신도시 역시 호가가 높아지고 신고가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1기 신도시는 1990년대 초 집값 안정과 주택난 해결을 위해 서울 근교에 건설한 신도시로 분당과 고양 일산, 군포 산본, 부천 중동, 안양 평촌 등이 이에 해당한다.
1기 신도시는 1989년 개발계획 발표 후 1997년(입주기준)까지 총 432개 단지, 29만2천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이들 지역 아파트 상당수가 노후불량건축물(시행령 기준) 대상인 30년차에 접어들면서 정비사업 대상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문제는 재건축 정밀 안전진단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이 가로막고 있다.
정밀 안전진단은 정비예정구역별 정비계획 수립시기가 도래한 때 실시한다. 지자체의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는 정밀 안전진단을 통해 D등급(조건부 재건축)과 E등급(재건축 확정) 이상 받아야만 재건축의 가능성이 생긴다. 지자체는 안전진단 등을 종합고려해 정비계획을 수립한다.
윤 당선인의 공약 중 하나였던 30년 이상 노후 공동주택의 정밀안전진단 면제 공약은 현실성이 사실상 없다보니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는 국민의힘이 정비사업 규제 관련한 개정안을 발의한 만큼 국회 입법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등 소속 의원은 정밀안전진단 완화 등이 포함된 '도시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내진 성능 미확보 및 소비시설을 갖추지 못한 건축물은 재건축 단계에서 안전진단 생략 ▲주거환경 중심 평가 시 구조안전성 분야 가중치 30% 이상 되지 못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재초환, 연내 마무리…해당 지자체 주민들 "뒤통수 맞았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역시 개편될 전망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란, 재개발에 의해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국가가 환수해 투기를 방지하고 조세와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다. 하지만 해당 제도는 재건축 사업의 경제성을 떨어뜨려 정비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돼 왔다.
정부는 현행 3천만원 이하인 재초환 면제기준을 상향 조정해 대상을 확대하고 3천만원 초과부터 구간별로 10%부터 최대 50%인 부과율을 절반가량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법 개정사항이어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현 정부는 가까스로 안정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이 윤 당선인의 규제완화 공약으로 불안해지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최근 "어렵게 안정세를 찾아가던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규제 완화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며 인수위를 겨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수위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도조절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내달 초 발표되는 새 정부 국정과제에 정비사업 관련 공약 내용이 담기더라도 실제 시행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비사업에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분당, 일산 등 지역일대는 정비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가운데 인수위의 부동산 규제 관련 입장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입주 30년이 넘은 분당 서현동 시범단지는 지난해 말 1기 신도시 중 처음으로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온라인 등을 통해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국민의힘이 출범하기 전에 간보기부터 한다', '규제 완화로 표 얻고 말이 바뀌었다' 등의 반응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신도시는 기존 정비사업과 달리 특별법 별도의 트랙으로 가되 긴 호흡으로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1기 신도시는 30년 이상 노후화됐지만, 현행법상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고 사업성이 좋지 않아 신도시 특별법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주택공급을 위해 여야간 긴밀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 외에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사전 다양한 지원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웅 기자(her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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