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지구 가열화에 따른 기후위기 중 하나는 가뭄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뭄으로 고통 받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울창한 숲에 가뭄이 찾아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강풍까지 몰아치면 산불은 걷잡을 없다. 파괴적이고 통제 불능상태에 빠진다.
지난 4일 발생한 강릉과 울진 산불은 이 조건에 들어맞았다. 건조한 날씨, 양간지풍(양양~간성사이 부는 강한 바람), 바짝 마른 우거진 숲이 맞아떨어지면서 삽시간에 퍼졌다.
대형 산불은 미국에서도 가장 아픈 기후위기 영향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8년 11월 8일. 캘리포니아 뷰트 카운티. 이 지역은 6년 연속 가뭄에 시달렸다. 뷰트 카운티는 7개월 동안 거의 비가 오지 않았다. 건조한 여름은 봄의 초목을 바싹 말렸다. 가을의 강한 북동풍은 시속 56km 속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 같은 조건에서 대형 산불 ‘캠프 파이어(Camp Fire)’가 발생했다. 동 트기 직전에 강한 바람은 불꽃을 삽시간에 키웠다. 캠프 파이어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파괴적 화재로 기록됐다. 622㎢의 숲을 태웠다. 1만4천개의 건물을 파괴됐다. 8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2년 3월 4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 울진 산불의 최초 발화지점이 폐쇄회로TV에 포착됐다. 차량이 지나간 뒤 인적이 드문 2차선 도로 옆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바로 시뻘건 화염으로 악화했다. 지금까지 정황상 차량에서 버린 담배꽁초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은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몇 분 만에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산을 집어삼켰다. ‘건조+강풍+바싹 마른, 불에 잘 타는 울창한 숲’의 최악의 조건에 불꽃이 붙은 셈이다. 기상청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1년 우리나라 겨울(2021년 12월~2022년 2월)은 매우 건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겨울철 전국 강수량은 13.3mm(평년 대비 -75.7mm, 14.7 %에 해당)에 불과했다. 1973년 이후 가장 적었다. 겨울철 동안 전국 평균 일강수량이 가장 많았던 날(2월 26일)은 고작 1.2mm에 그쳤다. 강수일수도 11.7일(평년 대비 -7.8일, 하위 1위)로 역대 가장 적었다.
건조한 겨울이 계속되면서 울창한 숲의 나무는 바짝 말라 있었다.
이처럼 가뭄으로 빚어진 건조한 상황은 산불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비가 오지 않고 습도가 낮아지면서 나무와 식물을 건조시킨다. 이러한 조건에서 번개, 전기 고장, 담뱃불 등으로 스파크가 발생하면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벤 쿡(Ben Cook)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더드우주연구소 박사는 “산불은 숲에 나무와 초목이 충분하고 바짝 말라있다면 최악의 조건으로 빠질 수 있다”며 “가뭄으로 초목이 마르면서 더 많은 화재를 일으키는 환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바짝 마른 숲이 울창하다면 화염이 숲의 캐노피(꼭대기)까지 도달하면서 산불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불은 파괴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다.
바람이 강하지 않더라도 산불이 발생해 숲의 캐노피까지 확산하면 자체적으로 화염 폭풍이 불어 산불을 더 강화시킨다.
NASA 측은 “불이 강렬하고 많은 열을 방출한다면 자체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며 “주변 바람이 약해도 이 같은 불은 바람이 정말 센 것처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 6차 평가보고서 실무그룹II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정태성 국립재난안전연구원 박사는 “기후위기와 관련해 지자체별로 주요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IPCC 실무그룹II 보고서에서 앞으로 비가 많은 지역은 더 많이, 적게 오는 지역은 더 적게 등 극단적 기후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분석했다”며 “지역별로 기후위기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를 확정하고 빈도와 강도, 주민 공감대 등을 종합 분석해 지역 리스크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의 경우도 강원 지역의 봄철 주요 리스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봄철 산불 위험이 큰 강원도의 경우 산불이 해당 지자체의 주요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주요 리스크로 확정되면 이후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 수종을 선택한다거나, 도로 주변에서 담뱃불로 인한 화재를 막기 위한 차단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기후위기에 따른 미래의 부정적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 리스크를 줄이고 방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자체별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강릉과 울진 등 동해 산불은 천리안위성 2A호가 우주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두 개의 커다란 연기기둥이 동해 바다 쪽으로 길게 흘러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산불이 강력했다는 방증이다.
산불은 예방하는 게 기본이다. 산림청은 ‘산불 예방은 이렇게’라는 지침서에서 ▲산불위험 높은 통제 지역 산행 금지 ▲라이터, 담배 등 화기물 소지와 흡연 금지 ▲허용된 지역 외 취사와 야영 금지 ▲산림과 가까운 곳에서 논·밭두렁·쓰레기 태우기 금지 등을 강조했다.
/세종=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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