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신세가 될 것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전 삼성전자 회장)은 23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발간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 특별 인터뷰에서 이같이 기술 리더십을 강조했다.
권 고문은 "미국이 삼성전자, 대만 TSMC를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 초대하거나 미국 내 팹 투자를 주문하는 건 삼성이나 TSMC의 기술 때문"이라며 "(미국은) 앞선 반도체 제조 능력을 찾는 것이며 이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면 언제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며 기술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고문은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흔히 시스템반도체를 '다품종 소량생산'이라 하지만 정의부터 잘못됐다"며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대량생산' 비즈니스로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해 내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려면 큰 기업이 돼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1천억~2천억원규모에 머물러 있다"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겠다고 접근하면 앞으로도 성공할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내다봤다.
권 고문은 "우리나라는 반도체 제조 기술이 강하다"며 "주요 국가에서 반도체 자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의 분업화가 쉽게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유럽이나 미국도 반도체를 직접 다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면 언제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지니어 출신의 권 고문은 2004년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2008년 반도체사업부 총괄사장을 거쳐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DS부문장에 오른 뒤 이후 5년간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직을 끝으로 지난해부터 고문으로 물러났다.
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는 삼성전자가 약 40년 전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업체인 ASML 인수를 추진했었다는 일화도 소개됐다.
ASML은 EUV를 이용해 5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전세계 유일한 업체다. EUV 노광장비는 초미세 공정 한계 돌파와 극복과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장비이기 때문에 ASML은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을'로 여겨진다.
반도체산업협회 초대 협회장을 지낸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에 대해 "1982년 필립스가 삼성전자에 ASML(당시 ASM) 인수를 제안해 현지 실사를 위해 미국 본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ASML은 당시 업력이 짧았고 삼성도 사정이 넉넉지 않아 인수를 포기했다"며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구현 기술을 따져 보면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기준 이 회사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김 전 부회장은 "ASML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성공한 것처럼 반도체 원천 기술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남의 것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원천 기술로 반도체 시대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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