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SK텔레콤이 창사 이래 37년 만에 통신회사와 투자회사로 나눠지면서 SK하이닉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M&A 승부사'로 불리는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가 신설 투자 회사인 SK스퀘어 대표로 가게 되면서 인텔 낸드사업부 외에 또 다른 대규모 인수 합병을 통해 반도체 사업 덩치를 키울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다음달 1일(분할기일)부터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전문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앞서 SK텔레콤은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SK텔레콤-SK스퀘어 분할안을 의결했다.
SK스퀘어는 ICT 플랫폼 사업 투자에서 축적된 노하우로 현재 26조원인 순자산가치를 2025년에 75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산하엔 SK하이닉스와 ADT캡스, 11번가,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콘텐츠웨이브, 드림어스컴퍼니, SK플래닛 등 16개 회사가 편제되며 반도체, 미디어, 보안, 커머스 등 주요 포트폴리오 자산을 기반으로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업계에선 박 대표가 순자산가치를 현재보다 약 3배 더 키우기 위해 SK하이닉스를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미래형 반도체와 혁신 기술에 투자하는 데 의욕을 보이고 있는 데다 박 대표가 M&A 전문가란 점에서다. 실제로 박 대표는 지난 2012년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인수를 진두지휘했고 2017년 일본 키옥시아(당시 도시바메모리) 투자, 지난해 인텔 낸드사업 인수계약 등 SK하이닉스의 굵직한 투자에 관여했다.
업계 관계자는 "박 대표는 과거 반도체 위기론이 한창일 때 하이닉스 인수를 주도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이를 발판 삼아 반도체 사업을 키우는 데 당분간 집중할 듯 하다"며 " 최근 미국 출장길에 올라 투자자들을 상대로 설명회에 나선 것 역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초대형 M&A를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상태인 만큼 박 대표가 기업 성장을 위해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매출 31조9천억원에서 94%에 해당하는 30조원이 메모리 반도체로부터 나왔다. 나머지 6%는 파운드리 사업 등이다.
박 대표가 지난 5월 'K-반도체 전략' 발표 자리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키우고자 하는 의욕을 드러낸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보탠다. 당시 박 대표는 "현재 대비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국내 설비증설, M&A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올해 4월에도 파운드리 투자를 언급했다. 박 대표는 월드 IT쇼에서 "파운드리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삼성도 파운드리를 하지만 국내 팹리스 업체들 사이에 TSMC 기술 수준의 파운드리 서비스를 해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고, 여기에 공감해 우리도 투자를 많이 할 생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파운드리 사업을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통해 진행 중으로 성과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현재 8인치 웨이퍼 공장에서 이미지센서(CIS),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전력관리칩(PMIC) 등을 생산 중으로,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27% 증가한 7천3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4.55% 늘어난 1천179억원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안으로 충북 청주의 SK하이닉스시스템IC 관련 시설을 모두 중국 우시로 옮길 예정으로, 1천여 곳에 이르는 중국 팹리스를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SK텔레콤의 AI 반도체와 같은 기술 집약적인 반도체를 생산할 능력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SK텔레콤이 개발한 데이터센터용 인공지능(AI) 반도체 '사피온'을 자회사이자 글로벌 종합반도체기업(IDM) 3위인 SK하이닉스가 만들지 않고 대만의 TSMC가 생산한다는 점 때문에 내부에서도 파운드리 투자 결심을 갖게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반도체 산업의 핵심 분야로 떠오른 AI 반도체 생산을 위해 SK하이닉스가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내부에서 많은 것으로 안다"며 "SK하이닉스가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면 자회사 경유가 아닌, 자체 해결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SK하이닉스가 생산설비를 새로 구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장비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어렵사리 장비를 확보한다고 해도 생산능력을 갖추고 본격적인 생산활동에 들어가기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업계에선 SK스퀘어의 첫 번째 투자 기업이 반도체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내 파운드리 회사인 '키파운드리' 인수를 가장 먼저 추진할 것으로 보고 다음달 SK스퀘어 출범과 함께 관련 계획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키파운드리는 8인치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1979년 세워진 LG반도체가 모체다. 1999년 현대전자와 합병한 하이닉스반도체에 소속됐다가 2004년 분사한 매그나칩으로 사업부가 옮겨졌고, 지난 4월 매그나칩반도체가 회사 파운드리사업부를 분리·매각하면서 현재 독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8인치 반도체의 수급 불균형에 따라 호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SK하이닉스가 적기 투자로 시장에 뛰어들어야 효과를 크게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SK하이닉스는 매그너스 사모투자합자회사(PEF)에 49.8%를 출자하며 이 회사의 펀드 출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펀드 총액은 5천100억원 정도다.
SK스퀘어가 공시를 통해 알린 자본 총계는 6조8천298억원으로, 키파운드리를 완전 인수하기에 충분한 액수라는 평가가 많다. 이를 기반으로 키파운드리를 SK하이닉스가 완전히 인수한다면 키파운드리로서는 친정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다만 10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인텔 낸드 부문 인수도 완료되지 않았고, 120조원을 들이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있어 현 시점에서 파운드리 관련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키파운드리 인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인텔 낸드 인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의 영향으로 투자와 관련한 자금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박 부회장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 하다"며 "유력한 자금원이었던 일본 키옥시아 투자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키파운드리 인수 결정을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로 보인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파운드리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현재로선 특정 시기까지 어떤 것을 하겠다고 결정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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