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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ESG] ① 기업생존 키워드 '착한기업'…"환경·사회·지배구조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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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규제 강화, 무역·투자장벽 우려도…업종·기업별 특성 탓에 현장서 '혼란'

ESG는 경영 패러다임에 엄청난 변화를 주고 있다. [그래픽=조은수 기자]
ESG는 경영 패러다임에 엄청난 변화를 주고 있다. [그래픽=조은수 기자]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매출과 영업이익 등 종전 재무성과를 중심으로 한 기업가치 평가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기업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심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부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ESG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간 미국에서도 최 회장은 'ESG 경영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미국 정·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애플, 아마존 등으로 구성된 미국 경제단체 BRT(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수장인 조슈아 볼튼 회장과의 화상 면담에선 "ESG 경영 정착이 기후변화, 소득격차, 인구감소의 해법"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ESG 철학을 설파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열린 도쿄포럼에서도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 사회적 가치 창출,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ESG 경영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재계에서 ESG 경영에 가장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 "올해가 韓 ESG 원년…대-중소기업간 편차 커"

9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을 포함한 국내 주요 기업 수장들은 최근 앞 다퉈 ESG 경영을 내세우고 있다. 기업의 생존 키워드로 떠오른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것으로,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와 맞물려 ESG 공시와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유럽연합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역내 은행,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금융공시 제도(SFDR)'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재무 성과와 함께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 등의 요인을 고려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일부 선진국 투자자들은 ESG를 잘하는 기업이 수익이 좋다고 보고 기업의 ESG 활동을 투자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화석연료로 25%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은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겠다는 투자 전략을 깜짝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재계 관계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버는 기업보다 합리적 방법으로 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착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이라 성과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펀드가 주식 투자할 때도 ESG를 고려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ESG 대응 수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편차가 큰 상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월 글로벌 ESG 확산 추세가 국내 산업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국내 기업의 ESG 대응 수준은 선진국 10점을 기준으로 대기업이 7점인 반면, 중소기업은 4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총액 기준 국내 10대 그룹 중에선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등 8곳이 이미 ESG위원회를 설치한 상태다. 신세계도 (주)이마트와 (주)신세계 각각에 기존 사회공헌위원회를 확대·개편한 ESG 위원회를 설치했고, 현대중공업, CJ 등도 ESG 위원회 설치를 마무리했다. 이에 재계에선 올해가 한국의 'ESG 원년'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 선진국, 기업평가 척도 ESG…무역장벽 우려도

그동안 기업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돼 왔지만 ESG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주주행동주의가 강해지면서 사회적책임투자(SRI)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또 선진국들이 ESG를 기업 평가의 척도로 삼으면서 관련 규제가 무역과 투자장벽이 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올해 상반기 중 '유럽 그린딜 법안'을 마련하고 오는 2023년부터 시행에 돌입한다.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량 제로 달성을 위해 탄소국경세 부과,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등 다양한 규제에 나설 방침이다.

영국도 기후변화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권고안에 따라 모든 상장기업의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피치, 무디스, S&P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발 빠르게 ESG를 기업 신용평가에 반영하며 요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나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기관뿐 아니라 국민연금도 ESG를 중요한 투자지표로 삼고 있다. [그래픽=조은수 기자]
모건스탠리나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기관뿐 아니라 국민연금도 ESG를 중요한 투자지표로 삼고 있다. [그래픽=조은수 기자]

ESG 경영에 힘을 쏟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가장 중요한 척도로 탄소 중립을 삼고 있다. 최근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이 글로벌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공급망 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대기업의 78%가 2025년까지 탄소중립을 이행하지 않은 공급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대기업의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한국 공급업체들의 잠재적인 수출 손실 규모는 2030년 최대 1천425억달러(약 158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국내에선 최근 몇 년 사이 각 기업들이 ESG 경영을 빠르게 도입하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동종 업계 경쟁사나 다른 업종 기업들이 ESG라는 공통의 목표 달성을 위해 손을 맞잡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탄소중립 혁신기술 개발을 목표로 현대차와 SK E&S,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GS에너지, 두산중공업, 효성중공업, 현대경제연구원 등 10여 개 기업·기관이 '에너지 얼라이언스'를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SK텔레콤과 카카오도 ESG 공동 펀드를 조성해 혁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ESG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 국민연금 '투자확대'·거래소 '공시의무화'…국내기업도 준비 '착착'

국민연금도 오는 2022년까지 전체 자산의 50%를 ESG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올 초 '기업공시제도 개선 간담회'를 진행하며 오는 2025년까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자율 공시를 활성화하고,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주력 사업을 잘 키우면서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는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며 "ESG를 지표로 글로벌 자금이 움직이는 데다 기업의 ESG 경영이 기업 이미지는 물론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울산공장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실제로 삼성물산은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탈석탄'을 선언했다. 한화는 작년 말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됐던 '분산탄' 사업을 떼어내 매각했다.

전자업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보호 등이 강조되는 흐름에 맞춰 ESG 경영 강화에 나섰다. 사회적 약자의 제품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재생 플라스틱과 같은 친환경 소재 활용 등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계는 대표가 진두지휘하는 ESG위원회를 신설하고 제품 포장을 친환경적으로 교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ESG 경영에 동참하고 있다.

통신업계는 ESG 조직을 확대하는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 등 친환경 활동과 취약 계층 지원에 힘쓰는 모습이다. 건설업계도 친환경·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본격 추진함과 동시에 ESG·녹색 채권 발행, 협력사들의 ESG 평가 모델 개발 등 ESG 경영을 전사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전개하고 있다.

'원청-하청' 관계로 불렸던 밸류체인(공급망)에도 ESG 개념이 적극 도입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력회사 리스크 통합 관리시스템인 G-SRM 등을 운영하고 있고, 현대제철은 매년 공급망 ESG 평가를 실시해 노동·인권, 환경, 준법, 안전 등 잠재적 리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 ESG 개념 모호…분위기 확산 위해 정부 역할 '중요'

다만 일각에선 업종별·기업별 사업 환경이나 경영 방식의 차이로 인해 ESG의 구체적인 개념이 아직까지 정립돼 있지 못하다는 점을 두고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경련이 지난 3월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ESG 경영전략 수립의 '애로 요인'에 대한 질문에 'ESG의 모호한 범위와 개념'이라는 응답이 29.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자사 사업과의 낮은 연관성(19.8%), 기관마다 상이한 ESG 평가 방식(17.8%), 추가적 비용 초래(17.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SPC삼립이 '고객 친화 ESG 경영 약속의 날'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PC 삼립]
SPC삼립이 '고객 친화 ESG 경영 약속의 날'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PC 삼립]

또 각 기업들이 ESG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가 ESG를 국가적 의제로 삼아 기업의 ESG 경영과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게 법적·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제각각인 ESG 정보 공개 기준을 마련하고, 투자자들이 쉽게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ESG가 주목받는 표면적인 이유는 환경 문제와 지속가능경영, 상생 등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ESG 요소 중 특히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ESG 경영이 기업의 이익추구라는 본질을 포장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기업의 ESG 경영이 공익에 기여함으로 인해 기업가치를 제고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외국계 투자자들이 지배구조를 '기업 지속가능성'의 원천이자 척도로 평가하는 경향이 크다"며 "대외적 이미지 쇄신뿐 아니라 ESG 지표에 대한 평가가 외부 투자유치 등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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