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경영책임자 위치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은 '연좌제'와 같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정책의 기조를 현행 '사후처벌 위주'에서 '사전예방 정책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시급한 국가적 과제 아닙니까."
"현재도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은 수천 가지의 죄목 앞에 살얼음 판을 걷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무섭고 강력한 중대재해법이 정치적 고려만으로 단기간에 입법화된다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되는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거대 여당이 최근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을 독단적으로 처리한 데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까지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경제계가 울분을 토해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헌법과 형법을 크게 위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사업주와 기업인의 책임·처벌에만 집중돼 있는 등 과잉 규제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경총과 전경련,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등 30여 개 경제단체들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의견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용근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우태희 상근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권태신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서승원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신승관 전무,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반원익 부회장, 대한건설협회 정병윤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역대 최대의 경제·고용위기 극복에 전력투구하고 있음에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특고 고용보험법 등이 무더기로 통과돼 규제 쓰나미로 크게 상심하고 있다"며 "또 다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까지 입법된다면 우리 기업들이 받는 충격과 좌절감은 어느 정도일지 정부와 국회도 십분 헤아려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헌법과 형법을 중대하게 크게 위배하면서까지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려는 중대재해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의사도 분명히 드러냈다.
앞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중대재해법을 발의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14일 기존에 발의됐던 4개 법과 기본 골격은 비슷하나 위헌 지적이 있었던 부분을 보완한 중대재해법을 발의했다.
기존 산안법은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을 책임자나 관리자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과실에 따른 산업재해 사망 사고 발생 때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은 3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최대 매출액의 10%도 벌금으로 내야 한다. 영업허가 취소·정지 등의 제재도 받는다.
이에 경제계는 여당의 반기업법 관련 입법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법마저 제정될까 불안에 떨고 있다. 또 이 법의 처벌 범위가 현행 산안법보다 넓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산안법은 사업주의 의무 규정만 1천222개에 달한다.
경제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모든 사망사고 결과에 대해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필연적으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게 책임과 중벌을 부과하는 법"이라며 "이는 관리범위를 벗어난 불가능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자리와 위치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운수소관의 운명이 되고 연좌제로 당하는 것과 같다"며 "대기업의 대표와 이사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오너들이 모두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또 참석자들은 유해·위험방지라는 의무범위도 추상적·포괄적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사실상 과실범에 대해 2~5년 이상을 하한형으로 징역형을 부과하고, 3~5배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부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안이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형법상의 '책임주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도 중대하게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동일하게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처벌 대상이 명확히 입증됐을 때 처벌하는 것이 형사법 기본원칙인 '책임주의 원칙'"이라며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포괄적으로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할 경우 인과관계 없이 결과론적 얘기만 늘어놓는 이른바 '결과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형사법 체계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경제계에선 중대재해법이 영국 등 주요 국가보다도 처벌 수위가 높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법안은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에는 없는 형사처벌까지 담고 있고, 기업에 대한 벌금 외에 경영책임자 개인처벌, 영업정지·작업중지 등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4중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모델이 된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은 13년에 걸친 오랜 기간의 심층적인 논의와 평가를 통해서 제정된 것"이라며 "사업주 개인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고 법인에 대한 벌금만 강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중대재해법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처벌 법안"이라며 "우리나라 산업안전분야는 전문행정조직과 인력수준, 예방정책수준, 사회적 의식수준, 기술과 산업수준 등에서 전반적으로 영국보다 상당히 뒤처져 있는데도 기업처발만 영국제도를 차용하려는 그 자체가 시스템적 모순이고, 국가적 책임전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제계는 우리나라 산업안전정책의 기조를 현행 '사후처벌 위주'에서 '사전예방 정책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의 산안법상 사망재해 발생 시 처벌 수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며 "하지만 우리보다 처벌 수위가 낮은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선진산업국들에 비해 사고사망자 감소 효과는 더 낮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망 사고 감소효과를 실질적으로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보다는 다른 나라보다 매우 미흡한 수준에 있는 산재 예방 정책을 대폭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670여 개의 획일적이고 방만한 정부의 산업안전보건규칙도 업종과 산업현장 특성에 적합하도록 전면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경영책임자와 현장안전책임자 간, 원청과 하청 간의 역할과 관리범위를 명확히 규정해 적정한 책임소재를 정립하는 것도 우선 과제"라며 "산업안전행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방안과 근로감독관이 아닌 별도의 산업안전전문요원을 운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경제계는 정부도 기존의 규제와 처벌위주 산업안전정책에서 탈피해 인력충원, 시설개선, 신기술 도입 등 안전관리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세제혜택, 자금지원 등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고, 민관 협동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민간컨설팅과 민간교육기관을 강화하는 등 범국가적인 안전보건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만약 중대재해법이 제정된다면 산재예방 효과보다는 기업들의 CEO와 원청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산업안전보건활동을 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중형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과감하고 적극적인 산업안전 투자와 활동을 하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안전에 대한 인력과 투자에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들은 처벌위험에 상시 노출돼 이에 따른 우려와 부담감을 떨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경제계는 사망 사고 발생 시 형량을 가중시킬 수 있는 개정 산안법이 올해부터 적용돼 시행 초기인 점을 감안해 향후 몇 년간은 이 법에 따른 평가를 거친 후 중대재해법의 제정 필요성 여부를 중장기적으로 논의해 나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은 사후처벌 강화가 아니라 사전 예방정책 강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대재해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기업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다"며 "모든 사고책임을 일방적으로 기업·경영인·원청에게 귀속시키며 과중하게 짓누르는 입법 추진을 중단해줄 것을 다시 한 번 국회에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 경영계도 산업현장의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나 근로자의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근로자의 안전이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라는 확고한 인식 하에 안전경영에 더욱 매진해 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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